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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ol Hwang 황진솔 Nov 26. 2022

Remembering English Mum's Life

나의 영적 멘토이자, English mum 마가렛을 추모하며..


너무 존경하고 감사했던 마가렛이 넘치는 축복속에 그토록 사랑하셨던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떠났다.

누구보다 가장 예수님을 닮은 분이셨고,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셨던 분이다. 


마가렛을 처음 만난 건 대학시절 영국 어학연수 때였다. 

마가렛은 영국 예배를 마치고, 한국어를 못하시지만 늘 한인 예배를 한번 더 드리시곤 했다.

그런 영국 할머니가 난 늘 궁금했다. 


마가렛을 위해 영어 잘하는 멋진 유학생 형, 누나가 항상 마가렛 옆에서 통역해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언젠간 그런 날이 오길 간절히 바라며 부러워했다.


외국인과 대화 한번 제대로 해본적 없는 나는 영어를 정말 힘들어했다.

수능 영어 듣기평가도 넘 어려웠고, 토익 600점이 되지 않아 카투사 지원도 못했다. 


늘 영어를 잘 하고 싶은 열정만 가득한 나에게 기회가 왔다.

방학 중이었는지 유학생 형 누나 모두 한국에 들어가서

마가렛이 통역없이 한국어 예배를 혼자 드리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아니면 마가렛이 안쓰러워 보인건지,

전자사전을 꺼내들고 마가렛 옆자리로 가서 

'렛미 인트로듀스 마이셀프'를 당당히 외치고 통역을 시작했다. 


하필 그날 성경말씀은 구약 레위기 언약궤 관련 내용이었고,

결국 나는 한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전자사전만 두드리다 가끔 단어 몇개를 말한게 전부였다. 


예배를 마치고 너무 긴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창피함과 자괴감에 가득차 있던 나에게

마가렛은 Well Done… 이라고 언제나 그렇듯 환하게 웃어주며 나를 꼭 안아주셨다. 


그리고… 

오늘 통역이 너무 좋았는데 다음주부터 계속 통역을 해줄 수 있냐고 말도 안되는 요청을 하셨다. 

그렇게 나와 마가렛의 첫만남은 시작되었고, 이후 매주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해서 영어를 가르쳐 주시고 음식도 대접해주셨다.



매주 마가렛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며,

종교와 인종을 떠나 나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영적인 자녀로 캐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가렛을 엄마라고 부르며 삶을 나누는 사람들 중에는 무슬림도 흑인도 있었다.


마가렛 거실에 걸려있는 사진



나 역시도 짧은 4개월 남짓한 시간 마가렛과의 진한 만남을 통해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은 생겼고, 매주 한영으로 통역을 하다보니 좀 특이하게 영어 듣기보다 말하기가 먼저 편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마가렛과 이메일로 꾸준히 교제하며

나도 개발도상국 사람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관심이 많았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에 대한 이슈도,

미국 유학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이후 취업과 더 브릿지를 창업하는 모든 중요한 순간에 마가렛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멘토로 나를 위해 기도해주고 방향성을 제시해주었다. 


더 브릿지를 창업을 준비하면서 왜 이 일을 시작했고 어떤 모델을 가지고 있는지 정리해서 보내드렸다. 

보통 바로 이메일 답신을 주시곤 하는데,  

두달 가까이 답신이 오지 않아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게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다. 


다행이 두달이 지나 장문의 이메일이 왔다.

A4 두장 정도 되는 긴 이메일이었고,

더 브릿지 운영과 사업모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내가 반드시 체크해야 하는 중요한 포인트를 정리해주셨다. 


내가 보내드린 자료를 보시며,

자신의 경험과 조사를 바탕으로 지난 두달여간 계속 메일을 작성하고 계셨던거 같다. 


더 감동이었던 것은, 

메일의 가장 마지막에 'Sent from my iPhone' 이라는 문구였다.


연세가 있으셔서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하셨고

두달간 휴대폰으로 자신의 생각을 조금씩 정리해주신 것이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감사했고 큰 힘이 되었다.

나도 그런 삶을 조금이나마 본받으며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더 깊어졌다.


마가렛이 보내줬던 장문의 이메일 일부


부끄럽지만 늘 마가렛이 나에게 먼저 안부를 물어봐주었고,

내 생일에도, 성탄절, 부활절에도 축복의 메세지를 먼저 보내주면

그제서야 내가 소식을 전하곤 했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영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 내게 기도제목을 물어보는 마가렛에게 

"어제보다 조금 더 예수님을 닮은 오늘, 그렇기에 지금이 가장 최고의 순간"이길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난 그 기도제목을 잊고 있었는데,

이메일을 통해 마가렛은 늘 그 기도제목을 위해 기도하며 나에게 상기시켜주었다. 


나보다 내 기도를 더 기억해주셨던 분..

정말 예수님과 같은 분이었다. 


마지막 돌아가시기 전에도 나와 더 브릿지를 기억하시며

마가렛을 기억하는 온라인 헌사 페이지에 화환 대신에 더 브릿지에 기부해달라는 링크까지 남겨주셨다. 


아마 마가렛이 먼저 나를 섬겨주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소중한 관계를 맺지 못했고, 지금까지 더 브릿지를 운영하지 못했을거 같다.




언제부터 인가 'special son' 이라고 불러주시며

내가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마다

더 큰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돌아볼 수 있도록 깊은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모든 것이 완벽해보이는 마가렛 이지만, 그분의 삶의 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20대에 이혼을 하게 되었고, 오랜 투병생활을 계속 해오셨다.

일곱번의 암 진단을 받았고, 다리가 불편하셔서 편하게 걷기도 쉽지 않으셨다.

신장과 눈 수술도 하셨고 지난 몇 년 전부터는 면역세포가 작동하지 않아

감기처럼 작은 병에라도 걸리면 돌아가시게 되는 상황으로 병원 이외에는 집밖으로 나가시지 못하셨다. 


그렇게 힘든 시간에도 늘 이메일을 통해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나눠주시며

오히려 작아보일 수 있는 나의 문제를 공감하고 위로해주셨다.

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컨트롤 안에 있음을 기쁨으로 고백하셨다. 



유일한 외출이었던 병원가는 택시 안에서도 택시기사에게 복음을 전했고,

답답할 수 있는 집안에서도 여전히 아이폰으로 많은 사람들을 지원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것에 깊은 감사가 행복이 있었다.  


원하는 것이 이뤄질때만 고백되어지는 감사가 아닌,

모든 상황속에서 진심으로 감사를 고백하는 삶의 모습에 난 늘 감동받곤 했다. 

예수님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마가렛과 가장 유사한 인격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외에도 기억하고 싶은 추억들이 너무 많다.

늘 기도하며 응답받은 것에 순종했고 실천하며,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렸다.


누구보다 영적인 분이셨고, 누구보다 건강하고 균형있는 자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서의 정말 명예있고 능력있는 행복한 삶을 시간을 보내셨다.  


2003년부터 서로 공유했던 순간과 이메일을 돌아보며,

진심으로 내가 성장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시고 응원해주셨던 분이었음을 깊이 묵상한다. 


이런 분을 만나고 인격적으로 교제할 수 있어서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다. 


마가렛,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삶으로 보여주시고,

내 삶에 최고의 롤모델이 되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해요.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내도록 노력할게요.


* 온라인 헌정 페이지: https://in-tribute-1.farewill.com/margaret-rei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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