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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Jul 07. 2023

결핍은 나의 무기

언니에게 보내는 열네 번째 편지

독립기념일 인파 속에서 고생한 언니 글 읽으니까 나도 뉴스로만 보고 듣던 장면이 생각나서 덩달아 무서운 마음이 들었어.. 사고 없이 집에 잘 돌아와서 정말 다행이야 언니!


트라우마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가볍지만은 않은 내 얘기를 좀 해볼게.


나는 사실 결핍이 많은 사람이야. 이걸 인정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 한 때는 내가 결핍의 이유를 알고 싶어 정말 부단히 노력했고, 해결되지 않은 이 문제의 답을 내 유년시절 어딘가에서 찾게됬어. 그리고 함께 마주한 진실은 과거의 경험 자체는 무슨 수를 써도 바꿀 수 없단 거였지.


돌이켜 보면 20대의 나는 나에게 굉장히 무심했어. 진정한 행복을 찾는 것보다 겉으로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거든. 그때의 난 세상과 나로부터 내 못난 상처를 숨기고 싶었던 것 같아. 그렇게 스스로 꾸며낸 모습이 마치 나인 척 진짜 나를 외면했고, 애써 모른 척했던 내 감정은 30대를 기점으로 더 이상 눌러지지 않고 터져버렸어.


서른 살이 되던 해의 날 버티게 해 주었던 건 수많은 심리학 도서들이었어. 그때 나를 살린 책들은 지금도 내 책장 한켠에 자리 잡고 있어. 하지만 그로 인해 내 약한 모습이 탄로 날까 봐 그 책들을 구석에 숨겨둔 거 보면, 난 아직 내 트라우마와 현재 진행형인 거 같아.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직도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울 때가 많고 관계에서 버림받지 않을까 자주 불안해해. 미래의 성공이나 인정에 대한 집착을 다 버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야. 그래서 난 언니가 대단해 보일 때가 많아. 언니가 관계 중독에서 홀로서기까지의 과정과 노력은 내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이겨내고 있는 사람 같거든.


한참 부족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결핍을 무기로 쓰려고 노력 중이야.

불안은 미래로 나아가는 원동력으로
인정욕구는 나 스스로에 대한 욕심으로
애정결핍은 곁에 좋은 사람을 두고 오래 보려는 노력으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꿈 보다 해몽 이라잖아. 이게 설령 정답이 아니라고 해도 그냥 내 마음 가는 대로 믿어볼까 해. 결핍이나 상처가 없었으면 평생 아무 노력 없이 대충 살아지는 대로 살았을 수도 있잖아?


언니가 말한 “아쉬움의 한 겹 뒤에는 못다 한 설렘이 있다”는 말이 너무 좋은 것 같아. 그 말처럼 인생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 마음먹기 나름이지 않을까!


구름이 빠져나가자 곧 비가 내렸다.
내 안에 무지개가 떴다.
그리고 낱말들, 온갖 색깔들이 생겨났다.
나는 쉬고 싶어졌다.
내 안에서, 결정하는 건 나다.


- “내 안에 내가 있다” by 알렉스 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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