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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모두의 언니 Jul 08. 2023

가장 상처 많은 개가 가장 사납게 짖는다

동생에게 보내는 열세 번째 편지

나도 아직 트라우마로 인해 힘들 때가 있어. 계속 노력하고 애써야 하는 건가 봐.

 심리학 도서는 나도 정말 많이 읽었는데,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니 아주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런 결핍을 오히려 삶의 원동력으로 쓰겠다고 말하는 나아의 당찬 포부가 너무 멋있고 대단하다! 우리 아주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만 말자.




 얼마 전에 보스턴 교외 나들이를 다녀왔어. Drumlin Farm이라는 곳과  Walden pond라는 곳에 다녀왔는데, Walden pond는 소로우라는 미니멀라이프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작가가 2년 2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이야. 거기서 쓴 글이 "Walden"이라는 책으로 나왔는데, 미국에선 필수도서 중 하나라고 해. Thoreau(소로) 이야기는 다음 편지에 풀어보도록 할게!


 오늘은 Drumlin Farm이라는 곳에서 느낀 것에 대해 말해보려고 해. 더 정확히는 "Drumlin Farm Wildlife Sanctuary"라고 자연보호구역인데, 농장도 있고, 끊이지 않는 다양한 새소리로 가득한 곳이었어. 동물들도 많이 있었는데, 다들 어딘가 다치거나 아픈 곳이 있더라고. 부상으로 자연에서 홀로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해 데리고 있는 느낌이었어.

Drumlin Farm Wildlife Santuary


 천연기념물도 구경할 수 있었고, 한국에선 보기 힘든 동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동물원이라는 곳이 여기에서는 아픈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있다는 느낌이 강해서 이런 점은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


이 곳은 조류 관찰하기 너무 좋은 곳이라고 하더라!


새벽 시간에 가면 여우와 스컹크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이미 도착했을 땐 점심시간을 앞두고 있던 때라 그들을 볼 수 없었어. 대신 어떻게 사는지 울타리 안은 열심히 봤어. 언젠가 여우나 스컹크도 볼 수 있겠지?


내가 그들을 구경하는걸까? 그들이 우리를 구경하는걸까?




 미국은 큰 개들을 많이 데리고 다니고, 그들을 위한 기반 시설도 굉장히 잘 되어있어. 대변을 처리할 수 있는 봉투들이 길 곳곳에 구비되어 있고, 개들과 함께 뛰어놀 수 있는 공원, 해안가도 많이 있어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아마 천국일 것 같아.


 사실 난 강아지나 개를 조금 무서워하는 편이야.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작은 강아지도 마주치면 무서워서 남편 뒤로 숨곤 하거든. (그렇다고 싫어하는 건 아니야. 조금 친해지면 엄청 예뻐라 하는 편)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어. 스타마켓으로 장 보러 가는 길에 Dog Park라는 곳이 있어서 슬쩍 구경하고 있었어. 주인과 함께 온 개들은 부메랑을 던지며 뛰어놀고, 다른 개들하고 엉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근데 갑자기 목줄을 하고 있지 않은 개가 내 쪽을 보면서 엄청 짖는 거야. 순간 나는 그 자리 굳어서 머리가 하얘졌어. 갑자기 나한테 달려와 물면 어떡하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하면서 말이야. (크기가 결코 작지 않았어)


 한동안 짖던 개는 내가 가만히 있으니 짖는 주기가 길어지더니 이내 관심이 사라졌는지 다른 곳으로 가더라. 그 상황만 놓고 봐서는 그 개 옆에는 주인이 없어 보였어. 주인이 없는 개였는지, 잠깐 한눈 판 사이에 혼자 나온 건지, 길을 잃은 건지 아직도 정확히는 몰라.





 아픈 동물들을 보호하는 곳에 다녀오는 길에 그때 기억이 오버랩되면서 어디선가 본 글귀가 떠올랐어.


가장 사납게 우는 개가 어쩌면 가장 상처받은 개일수도 있다



 내가 감성을 너무 투영시켜서 생각한 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도 학창 시절을 순탄하게만 보낸 것은 아니라, 애정결핍이 조금 있었던 것 같아. 저번 일기에서 말한 관계 중독이라는 것은 이런 결핍의 산물이었던 것 같고. 물론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다 결핍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만, 나는 남들보다 조금 더 감성적이었고, 더 유난스러웠던 것 같아.


 그냥 슬프면 슬프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표현하면 되는데 나는 아프면 화를 내고, 슬프면 웃음거리로 자기 비하를 하면서 넘기고, 외로우면 자기 연민에 빠져 옆에 있는 사람을 지치게 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내 감정을 들키는 게 맨 몸을 보이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웠나 봐.


 그냥 아프면 나 지금 조금 아픈 것 같다고,
슬프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하고 실컷 울고,
화가 나면 이러해서 싫고, 화가 난다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야.




 가장 사납게 우는 개도 자신이 슬프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더 못되게 짖는 건 아닐까 생각해 봤어.

마치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을 테니 우리는 서로 감정에 솔직해지고 담백해지자.


 화가 나고 싫을 땐, 나는 이런 게 싫은데 당신이 그렇게 해서 싫고 화가 난다고, 슬플 땐 너무 외롭고 슬프다며 내게 연락해 전화기를 붙잡고 울어도 괜찮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울음이 그칠 때까지 기다려줄게. 물론 나아도 그렇게 해주겠지? 


내 인생 최악을 찍고 떠났던 아이슬란드 여행, 이때를 기점으로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결심했어


 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친구들과 야외 수영장에 가보기로 했어. 노트북 충전기 고장으로 미뤄놨던 브이로그도 만들어야 하는데, 한 번 게을러지니 하기가 싫어지네. 가족들이 브이로그 영상을 안보내면 걱정을 하더라고. 그래서 꾸역꾸역 꼭 만들어야 해. 


 나아는 오늘 어떻게 보낼지 궁금하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미소 짓는 나아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만 줄이도록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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