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보내는 열아홉 번째 편지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취향을 겪으면서 나도 깨닫는 바가 많은 것 같아.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편견들을 하나씩 깨부수면서 같이 더 우리 다운 미래를 만들어 가자! 훗날 우리가 이 교환일기를 통해 서로를 추억하며 웃음 지을 수 있은 앞으로가 되길 바라며
오늘은 Moma (Museum of Modern Art) 뉴욕 현대 미술관에 다녀왔어! 뉴욕에는 꼭 방문해봐야 하는 미술관들이 있는데 Moma는 그중에서도 이름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야. 미술사와 무관하게 현대 미술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 다른 의미로는 그만큼 획기적이고 언뜻 보기에 난해하기도 해. 비전공자의 눈에도 '와 - 이게 예술이구나' 싶은 미적 기준이 있는데, 오늘 경험한 현대 미술은 기존의 시각적 아름다움의 틀에서 벗어나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 많았어.
처음에 작품들을 볼 땐 꽤 혼란스러웠어. 가뭄에 콩 나듯 알법한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 반가울 지경이었다니까. 결과적으로는 재밌고 파격적인 작품들도 많았고, 내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신기할 정도의 명작들도 꽤 있었어. 오늘은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은 한 작품에 대해 얘기해보려 해.
이 작품을 봤을 때 사실 이게 뭔가 싶었어. 우리 집에도 몇 개 걸려있는 것 같았거든. 이 작품이 오늘 내가 본들 것 중에서 단연코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지닌 의미는 특별해. 맞아, 똑바로 봐도 거꾸로 봐도 이건 하얀 티셔츠야. 솔직히 작품 설명을 듣기 전까진, 왜 이게 뉴욕 최대의 미술관에 걸려있는 건지 의아했어.
1910년도에 만들어진 이 작품이 가지는 진짜 의미는 눈으로 보는 그 이상의 생각거리를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데 있는 것 같아. 이 작가는 방글라데시의 근로자 연대 센터의 창립자로, 노동의 존엄성과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사람이야. 언뜻 보면 이 작품은 그 시대 방글라데시에서 만들어진 ‘겨우 티셔츠 한 장’이지만, 사실 작가는 당대의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고 있어. 그땐 솜부터 실, 실에서 원단, 원단 재봉, 건조와 세탁 그리고 포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람의 손이 가는 일이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티셔츠를 사는 사람들은 그 뒤에 가려진 노동자들의 노고에는 무심했어.
이 작가는 노동력을 착취 당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그들의 인권을 싸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이 티셔츠 한 장에 담았어. 티셔츠 이면의 열악한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이 있음을 우리 모두가 깨닫고 함께 변화를 소리를 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 현대 미술은 어쩌면 작품의 미적 기준을 떠나 개념과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게 아닐까.
저 작가의 작품이 무려 뉴욕 현대 미술관에 걸리게 된 건, 방글라데시 최전방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싸워온 그의 신념이 티셔츠 한 장에 녹아있기 때문일지도. 그 티셔츠가 가진 가볍지 않은 의미로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줬기에, 2023년에 사는 내가 이 작품을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
그리고 자연스레 다음 질문을 던져 주기도 해.
우리의 무심함으로
그냥 지나친 순간에는
또 어떤 것이 가려져 있었을까
솔직히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다 둘러보지도 못했어. 다음번에 가면 또 어떤 새로운 사실과 해석을 해볼 수 있을지 않을까 기대돼. 뜻밖의 성찰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끔 해주겠지! 종종 미술관 다녀온 얘기를 나눌게. 오늘도 안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