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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Aug 19. 2023

자세히 보면 아름답다

언니에게 보내는 스물다섯 번째 편지

오늘은 특별한 날은 아니지만 기억에 남을 느낌이라 공유하고 싶었어.


오늘 남편이 한국에서 돌아와서 공항으로 픽업을 갔었어. 초행길이라 길을 잃으면 어떡하지 긴장도 잔뜩 했는데 생각보다 편안하게 공항에 도착해서 기분이 좋더라고. 남편의 입국심사가 길어지고 차를 데기도 애매해서 한 시간 동안 그 주변 동네를 돌아다녔어. 뉴욕 하면 제일 먼저 맨하탄을 떠올리게 되지만, 뉴욕시는 서울 면적에 2배 정도 될 만큼 큰 곳이라 이름조차 생소한 곳들도 참 많아. 당연히 도심에서 떨어질수록 치안이 좋지 않은 곳도 많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공항에서 너무 멀어지면 남편이 나오는 시점에 맞춰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주변 동네에서 마트를 잠시 들리려고 했어. 여기가 뉴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느낌이 다른 동네에 들어오게 됐지 뭐야.


시내에선 그렇게도 많은 백인들이나 아시안들을 찾을 수 없는 곳이면 자동적으로 긴장하게돼, 맞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맵으로 무작정 찍고 도착한 마트는 너무 노후해서 차를 두고 내리기가 조금 무섭더라고. 그래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데, 운전하는 내내 긴장이 됐어. 어쩌면 너무 많은 뉴스와 미디어에 노출돼서 언제부턴가 내 무의식 속에 겁이 많이 자리 잡은 것 같았어.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두 번째 마트 앞 거리에 주차를 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주차하는 내내 나를 뻔히 쳐다 보더라고. 솔직히 그때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어. 좀처럼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것도 공포감을 주더라. 당연히 밤이었으면 동네를 배후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너무 낮 11시였거든. 그리고 마트에 들어갔는 데 당연히 쾌적한 편의점이나 깔끔한 곳은 아니었어.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했는데, 막상 들어가서 마주한 주인분이 너무 친절했어. 뭘 그렇게 걱정했을까 긴장이 바로 풀리더라. 마실 것들을 대충 사고 서로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까지 하고 차로 돌아왔는 데, 아까부터 나를 쳐다보던 사람이 나한테 말을 걸었어.


억양이 너무 쌔서 솔직히 처음에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어. 왜 나를 불러 세우지 하는 불쾌감도 함께 올라왔을 때, 그 사람이 내 차 앞 범퍼를 보라고 그러더라. 그 말에 범퍼를 보는 데 사실 처음엔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어. 자세히 보니 살짝 스크래치가 났더라고. 순간 나도 모르게 저 사람이 그랬을까 라는 생각을 했어. 근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아까 내가 급한 마음에 주차를 하다가 살짝 부딪혔는데 그때 난 스크래치인 것 같더라고.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사람이 왜 내 차를 뻔히 처다 봤는지 이해가 됐어. 그제야 모든 의심이 풀려 나도 모르게 멋쩍게 웃으니까 그 사람도 그제야 웃는데 참 웃는 게 예쁜 사람이었어. 말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시 운전해서 가려는 데 그 사람이 가게 밖으로 나온 가게 주인과 인사를 한 뒤,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더라. 그 모습이 이상하게 좋아 보여서 나도 따라 웃음이 났어.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그리고 다시 운전해서 공항으로 가는 데, 그 짧은 순간에 내가 했던 모든 감정들이 다시 지나가면서 그 상황이 너무 웃겼어.


물론 같은 순간이었어도 처음 가보는 동네에 처음 보는 사람들을 향해 적절한 경계는 필요할 수 있어. 하지만 너무 굳어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어. 다른 눈으로 보면 그냥 그 사람들은 그곳에 살고 있는 날씨 좋은 어느 날에 기분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말이야. 너무 단편적으로 겉모습만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반성도 하게 됐어. 당연히 조심은 해야지, 사람들 말처럼 무서운 세상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 이 별거 아닌 특별하지도 않은 경험은 괜히 나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줬어. 무서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자세히 들여다본 발견한 작은 친절함은 정말 아름다웠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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