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령화 가족>
“담벼락에 꽃이 참 예쁘게 피었다. 엄마처럼 말이야.”
영화 <고령화가족>을 보고 난 뒤 계속하여 생각나는 문구다.
영화는 결혼에 실패한 딸(미연)과 손녀, 계속된 실패에 인생을 포기하려던 아들(인모)이 엄마 집에 모이면서 시작한다. 엄마는 교도소에 다녀와도, 결혼과 인생에 실패를 해도 따뜻하게 자녀들을 품어주면서 ‘가족이 모두 모이니 너무 좋다’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미 엄마의 집에는 교도소에 갔다 온 아들(한모)이 있는 상황이었고 세상에서 여러 모양으로 상처받고 실패한 자녀들이 엄마 집에 모이니, 꼴이 더 말이 아니었다.
엄마의 고기 밥상 앞에서도 서로 헐뜯고 서로 토라져 버리는 일이 빈번했고, 좋은 추억도 쌓고 잘 지내보려고 떠난 가족여행에서도 모르는 사람들과 밥상을 뒤집어가며 싸우는 바람에 엉망으로 끝났다. 누가 보아도 조용 할 일 없는 콩가루 집안의 모습이었지만 이런 것도 추억이라며 여유롭게 웃는 엄마를 보니 더욱 감정이입이 되었다. 엄마가 저리 여유롭기까지, 오랜 시간 남모르게 속 아팠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속 썩이는 자녀들, 사람들의 시선에 힘들고, 의지할 곳 없는 상황 속에서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버티고 살며 생긴 ‘마음의 굳은살’이 엄마가 보여주는 ‘여유’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령화가족>에는 자녀들의 원망과 남 탓을 고스란히 엄마가 받아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엄마가 몸을 팔아 가족들의 고기를 사는 줄로 오해했을 때도 아들 한모는 “나 나물만 있어도 밥 잘 먹어~ 왜 그랬어!”라며 엄마를 타박하고 딸 미연이는 “돈을 달라그러지, 왜 그랬어!”라며 엄마를 원망한다. 거기다가 엄마가 배다른 자식(한모)을 키우는 바람에 집안이 이 꼴이 되었다는, 엄마 마음에 못을 박는 얘기를 쉽게 한다. 자식들에게 고기를 먹이고 싶은 마음, 한모를 키운 엄마의 마음을 아무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녀들의 감정을 다 받아낸다. 과연 지긋 지긋한 이놈의 집구석은 누가 만드는 걸까? 자녀들을 너무 사랑한 엄마일까? 엄마의 희생을 마냥 하찮고 속상한 일로 여기는 자녀들일까?
‘가족은 희생 없이 이어질 수 없는 관계’
영화를 보기 전이나 후나 이 말이 썩 좋진 않지만, 이제는 나쁘게만 들리지는 않는다. 무한한 사랑과 희생이 있었기에 나 또한 건강한 성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명장면은 역시 담벼락에 핀 꽃을 엄마와 인모가 바라보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차갑고 울퉁불퉁한 담벼락 돌들 사이에 꿋꿋하게 핀 꽃이 엄마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돌벼락 꽃을 보니 울퉁불퉁 화목하지 않은 가족 안에서도 희망이 피어나는 것과 같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혹시 자신의 가족 내에서 ‘담벼락 사이 꽃’이 보인다면, 그 옆의 또 새로운 꽃이 되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