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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Aug 11. 2019

이런 장모님도 괜찮은가?

음식에 자신 없는 장모님

"구름이 너무나 예쁜 아침이네요.

멋진 하늘 보면서 저는 출근 중입니다. 00(우리 딸 이름)이는 아직 꿈나라고요. (딸은 10시 출근이다.)

어머님, 아버님도 오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사위가 결혼 초기에 보낸 문자이다. 행복에 겨워 온 세상이 아름답게 보였나 보다. 행복은 내게도 전해져 왔다.


사위에게 처음'어머님'이란 말을 들었을 때 사실 참 어색했다.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장모님은 좀 넉살도 좋고, 음식도 잘해주고, 손이 커서 올 때마다 무엇이든 바리바리 싸주어야 할 것 같다. 나랑은 좀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딸만 키운 내게 커다란 남자가 어머님이라고 하니 어색했다. 그보다는 친정엄마라면 딸 부부의 무슨 일이건 척척 해결해주는 주부 10단 정도 되어야 할 텐데 자신이 없었나 보다.


손녀를 낳기 전까지 2년 정도 기간 동안 딸 부부와 만나면 외식을 많이 했다. 사부인께서 정갈하게 음식을 잘하신다는 딸의 귀띔에 자신이 없기도 했고, 미식가인 딸 부부가 권하는 맛집 기행이 즐겁기도 했다. 손녀를 낳고는 아기를 데리고 외식이 불편한 경우가 많았는데 가끔 딸이 집으로 와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사위가 파스타 같은 요리를 해주곤 했는데 나는 좀 불편했다. 사위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애를 쓰는 것이 미안했고 딸이 그때까지도 요리에 미숙한 것도 그랬다. 무엇보다 내가 음식을 해놓고 불러다 먹여야 하는데 주책없이 사위가 해주는 음식을 먹는 것 같아 안절부절이었다. 나는 애들이 불편할까 봐 먼저 연락해서 오라 하지 않았는데, 딸 부부는 우리를 2주에 한 번은 만나려고 노력했고, 아기를 데리고 나가느니 우리가 움직여주길 바랬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더니 내가 손님이 되어 가려니 더 대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 답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 라는 말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말이다 ''학생답다',  '여자답다', '큰 딸답다', '큰며느리답다'라는 말은 듣고 산 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장모님 답거나 친정엄마 다운지 항상  의문이 든다. 우리 사위는 분명 '사위답다'.


어느 여름날 서울 시내에 홍수가 나서 강남역도 잠기고 내가 주로 수업을 하는 (나는 과외선생님이다.) 대치역 사거리도 물에 잠겼다는 뉴스가 있었다. 낮에 통화하는 일잘 없었던 사위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님, 은마아파트 사거리에 홍수 소식이 있던데요. 걱정이 돼서요.  어머님 오늘 그쪽에 수업 있으세요? "


나를 걱정하는 전화를 받으니 고맙기도 하고 내가 사위에게 챙김의 대상이 되었다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항상 아이들을 챙기고 걱정해 주었는데 사위가 나를 걱정해주니 보살핌을 받는 어르신이 된 기분도 들었다. 아~~~ 이제 자식들이 나를 챙기는 나이가 되었구나.....


2년 전부터는 딸 부부가 홍콩에 살고 있다. 전과 달리 한 번 홍콩에 가면 길게는 3주까지도 있다 온다. 딸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손녀를 잘 돌보지 못하게 바쁜 시즌에 내가 가 있다가 온다. 필리핀 가정부가 있어서 살림을 해주는 것은 아니고, 엄마가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해야 하니 아이가 안정감이 들도록 놀아주고 재워주기 위함이다. 처음 홍콩에 갔을 때에는 사위의 아침 식사를 챙겨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잠을 더 자고 시간이 임박해서 나가야 할 때 사위는 내게 너무 미안해하고 조금만 먹고 가거나 못 먹기도 했다. 나는 가족들에게 아침을 꼭 먹여보내는

스타일이지만 딸의 집에서는 그게 불편할 수도 있는 것 같았다. 요즘은 그들 스타일에 맞추어 사위의 아침을 준비하지 않는다. 사위가 나가고 나면 딸과 내가 식사를 한다. 저녁 식사는 주로 밖에서 하고 오는데 아이가 자는 시간보다 늦어지면 나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어른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젊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힘든지 7년 시집살이로 누구보다 잘 안다. 그냥 방에서 넷플릭스를 실컷 보다가 잔다. 휴일에는 딸 부부와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지만 혼자 사진을 찍으러 나가기도 한다.


나는 푸근한 장모님은 못 되는 것 같다. 그냥 딸 부부의 생활 스타일을 존중하고 따라주는,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적극 돕되 간섭은 하지 않고 지켜보려고 노력하는, 좀 부족한 장모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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