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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Aug 20. 2019

자식도 어렵고 부모도 어렵다

결혼한 자식과 부모사이

ug 19. 2019"

 "엄마, 고마워요!

 언제나, 항상, 그리고 특히 오늘 고마워요"

아이를 봐준 날 밤에 딸이 보내온 톡이다.


딸은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입주 가정부를 두었다.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일요일 저녁 9시까지 가정부가 없는 시간에 아이를 봐준 거니 그 정도 아이를 봐주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며 도와주었다. 언제나 예의 바르고 반듯한 딸이지만 이 문자에는 눈물이 나왔다. 딸과 나의 거리가 천 리는 되는 것 같았다.

딸은 힘이 들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라도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는 아이라 고맙고 대견한 마음과 함께 그 깍듯함이 거리감으로 느껴졌다.


사위는 결혼 초부터 그들 부부의 일은 되도록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다. 처음 집들이를 할 때에도 상과 방석을 준비해달라는 말에 집들이가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음이 바빠지면서 내 일정을 얘기하니

"오빠가 우리끼리 알아서 하재. 케이터링 서비스 이용한다고 나랑 집 청소랑 꾸미기만 하면 된대"라고 했다. 내 머릿속에 그려졌던 온갖 준비는 휙 사라졌다.

'아~~~~~ 요즘은 그렇게 하는구나.

  나는 가만히 있는 거구나.......'


딸이 바빠서 사위가 아이를 데려갈 때도 있었는데 밥을 해두었다고 해도 식사를 하고 왔다거나 다른 이유를 대며 먹지 않았다. 내가 밥을 차리고 치우며 힘이 들것을 알고 되도록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했다.  2년 전부터는 딸 부부가 홍콩에 살고 있는데, 이번 여름에 딸과 손녀가 3주와 와 있게 되자

"어머님, 00(딸)이와 **(손녀)가 한국에 있을 동안 힘드시겠지만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톡을 보냈다. 내 딸과 손녀인데 어련히 잘 돌보겠냐만 사위의 이런 톡이 난 좋다. 제 식구를 잘 챙기는 책임감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딸이나 사위가 내게 보이는 깍듯함 만큼 나도 그들에게 일정 거리를 두게 된다.


처음부터 사위가 딸을 잘 리드하면서 독립적으로 살려고 노력했기에 마마걸에 가까운 우리 딸도 힘든 일이 있을 때 되도록 둘이서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딸이 친정어머니와 의논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러다 보면 의견을 내게 되고 그것이 간섭이 될 수 있다. 내가 젊었을 때 고민이나 힘든 점을 친정어머니께 얘기하면 여러 가지 도움은 주셨지만 걱정과 잔소리, 간섭이 한 세트로 와서 한동안 괴로웠다. 나는 딸이 의논을 해올 때 고민을 들어는 주되 결정은 사위와 의논하라고 미룬다. "엄마가 그러는데~~~"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 말은 결국 간섭이 된다.


처음 결혼을 하면 둘이 적응하는 것도 어렵지만 양쪽 부모님에게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적응이 참 어렵다. 많은 며느리들이 시금치도 안 먹게 되는 시집과의 갈등, 요즘은 심심찮게 들리는 장서갈등도 어른들이 생각을 바꾸어야 하지만 부부도 자신이 결혼을 한 성인으로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여자는 친정이 편하다고 친정만 가까이하려 들어서도 안된다. 틈만 나면 엄마에게 가 있거나 아이를 맡기고 나가면 남편은 불편하다. 친정가족보다 남편이 더 가까운 사람이 되었으니 남편이 불편하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이 점은 남편이 더 잘해야 한다. 우리 전통 사고는 여자가 결혼하면 시집 사람이 되었다는 큰 착각을 하면서 많은 갈등이 일어난다. 평소 하지도 않던 효도를 아내를 통해 하려고 들어서는 안된다. 두 사람은 양가의 새 가족이 되었지만 그들은 독립된 가정을 이루었으니 둘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 둘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조율해야 한다.


자식이 결혼을 하고 나면 부모도 새로운 부모 노릇이 익숙지 않다. 지금도 딸과 사위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지, 내가 과한 친밀감을 가졌는지 과한 무관심인지 고민한다.  나의 경우, 그때도 드문 시집살이를 7년이나 했다. 내가 7년 동안 어머님과 큰 소리 한 번 안 내고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과 내가 온화한 성격이어서 이기도 하지만 남편의 공도 크다고 생각한다. 정말 신혼이던 시절에 어머님이 밤 9시경에 청소를 하셨다. 어머님은 모임도 많고 외출이 많으신 분이라 밤에 집안일을 하셨던 것 같다.  나도 나가서 도우려니 남편이 막았다. 남편이 나가서 어머니께 왜 밤에 청소를 하시냐며, 낮에 아주머니 안 오셨냐고 물었다. 물론 어머님은 내가 불편하리라는 생각을 못하신 거고 내가 청소를 도왔으면 그냥 당연하게 여기셨을 거다.  이후로 어머님은 9시 이후로 청소는커녕 거실에도 잘 안 나오셨다.

7년 세월 동안 힘들 때면 남편에게 하소연을 했다. 남편은 내 말을 들어주며 "알았어. 내가 내일 어머니께 얘기할게. 아유 어머니가 왜 그러시지? "라고 등을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다음 날 남편은 어머니께 아무 말도 못 했다. 남편이 하소연을 들어주었기에 나는 마음이 좀 풀려서 또 참아내고 참아낼 수가 있었다. 부모님도 자식도, 나빠서가 아니고 입장이 달라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 갈등을 모두 풀어가며 살  수도 없다. 매듭이 여러 번 생긴 줄이 튼튼하기도 하다. 때론 풀고 때론 이해하고 참아내기도 해야 한다.


 '시어머니 통역기'라는 것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어머님이 "이거 참 예쁘다. 새로 샀니?"라는 것은

"또 샀니?" 또는 "나도 사줘"

"요즘 바쁜가 보구나"는 "왜 그렇게 전화도 안 하니?"

"애들이 좀 말랐구나."는 "애들 밥은 잘 해먹이고 있는 거니?"라고 통역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우스개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부모님이 다 꽈배기는 아니다. 자식이 부모님 댁에 와서 
"어머님 이거 새로 사셨어요? 참 예쁘네요."라고 말했다고 그것이 꼭 사달라는 얘기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너무나 눈치를 보면서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는 뜻이다.


얼마 전 아들을 결혼시킨 친구가 일요일 점심에 아들 부부와 외식을 하고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며  영화도 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아들이

"엄마, 엄마는 할머니랑 영화 보면 좋아요?"라고 하더란다.  우리 50대는 며느리를 집안의 새 일꾼으로 여기는 세대는 아니다. 며느리 딸처럼 친한 가족이 되리라 기대하던 사람들이다. 밥을 하라고 한 것도 설거지를 시킨 것도 아니지만 시댁 식구와 시간을 더 보내기보다 둘이서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것까지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자칫 며느리를 딸로 만들려는 착각을 할 뻔했지만 아들의 직언으로 더 이상 실수를 줄이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다른 친구들에게 했는데 어떤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응이었지만 또 다른 친구는 아들에게 상처를 받을 꺼라며 걱정을 했다. 내 아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마음은 아프겠지만 아들에 대한 사랑을 빨리 걷어들일 수 있을 것이고 내 아들이니 또 마음은 누그러질 것이다. 만약 며느리에게 그런 상처를 받는다면 고부갈등이 생기고 그러면 내 아들이 힘들 것이다.


 요즘 시대에 맞는 아들, 딸, 며느리, 사위 되기는 참 힘들다. 요즘 시대에 맞는 부모님 되기도 역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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