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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Sep 03. 2019

다시, 자식과 함께 살기  

10년 만에 딸이 돌아왔다

2008년에 일본으로 진학한 딸이 2017년 여름,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교토에서 4년 대학생활을 한 후 동경에서 6년째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돌아온 것이다. 아이가 일본에서 취업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이 섭섭했다. 하지만 일본에서 최고로 여기는 대학을 나왔기에 일본에서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었다. 좋은 직장에 취직했을 때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평생 자식을 외국에 둘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일본에서 승승장구한다는 얘기를 들으며 한 편 안심되고 한 편 더욱 마음이 멀어질 것 같아 조바심이 난 게 사실이다.


딸이 돌아온 후, 이전에 딸을 대하던 것과 달라야 한다는 것은 안다.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일본을 드나들며 유학 준비도 혼자 했고 그곳에서도 너무나 잘 살아오던 아이니 잔소리할 일은 별로 없었고 있어도 참았다. 딸이 있으니 나는 수다가 늘었고 질문도 많아졌다. 그러나 내가 하는 질문이나 말이 때론 간섭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그 ‘때론’에 대해  의문스럽다.


월급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한 번 물었는데 알아서 한다는 식의 쌀쌀한 답을 듣고 멍한 적이 있다. 그렇지. 6년이나 직장생활을 한 아이인데 자기가 알아서 하겠지.

나는 청약저축이나 또는 연말에 세금을 환급받는 상품 등을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물어본 것이었는데..... 한국 직장인이 어떤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기사를 톡으로 링크해주고 은행 가서 상담하라는 말을 붙이니 며칠 후 가입을 하고 왔다. 이후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은 검색해서 링크해주고 “혹시 도움이 될까 봐”라고 보낸다. 일본에 있을 때부터 근무 중에는 개인 톡을 잘 안 보는 아이라 그러려니 하는데 “나중에 읽어볼게 “라는 답을 보내니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직장 다니는 자녀가 집에 오면 엄마는 온갖 음식을 해놓고 기다리지만 막상 아이는 잠만 자서 다 큰 아이를 얼굴이 닿을 듯 바라보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아이는 집에 와서 잠을 자는 것이 가장 꿀잠이었을 것이다. 엄마가 있는 그 집에 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궁금하다. 자식의 모든 것이. 놓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머릿속에서 자식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자식에게 무엇이든 해 주고 싶고 무엇이라도 공유하고 싶다.


젊은 딸이 있으니 중요한 일정이 있을 때면 옷차림이나 화장에 대해 묻는데 냉철하기가 이를 데 없다. 어느 스카프가 어울리나 자주 물었는데 이제 포기했다. 스카프를 잘 매지 않아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스카프는 요즘 트렌드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이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절대 조언을 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10년 혼자 사는 동안 더 진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 된 것 같다. 거울만 보거나 내내 셀카를 찍어대는 딸도 별로지만 혼자 여행을 즐기며 여행 사진도 찍지 않는, 쇼핑보다 서점과 도서관을 좋아하는 잘난 딸도 좀 힘들다. 나는 딸이 권한 강상중의 책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귀국 후 1년 정도 되자 퇴사를 선언했다. 이직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업종의 일을 하겠다는 거다. 원래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이번 직장 다음은 창업’이라던 아이였다.

그러라고 했다.

불안하기도 했지만, 그동안 딸이 살아온 과정을 보면 무슨 일이든 열심히 잘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20대인 딸이니 하고 싶은 일을 해봤다가 안되면 일본으로 가서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었다.


이제 딸이 퇴사한 지  1년이 넘었다.

이 1년 동안 딸은 게으른 적이 없다. 부지런히 공부하고 글 쓰고 요리하고.....

그러다 보니 벌써 조금씩 자리를 잡는 느낌이다. 이후 딸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지만 일본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이성적인 우리는 잘 싸우지 않는다. 여느 모녀처럼 함께 옷 쇼핑을 다니지도 않는다. 내가 많이 섭섭하거나 잘못됐다고 생각될 때에는 딸에게 장문의 톡을 보냈다. 2년 동안 딱 3번이다. 지적, 조언, 제안으로 나누어 썼다. 반론은 없었고 조용히 받아들였다.


큰 딸이 결혼하고 둘째 딸이 돌아올 때까지 5년 정도 우리 부부만 살다가 딸이 오니 좋은 점도 나쁜 점도 있었다. 온전히 내가 쓰던 방이 하나가 없어져서 남편과 나는 공부방을 나눠 써야 한다. 깔끔한 딸에게 한 소리 듣지 않으려고 집을 깔끔하게 관리한다. 너무 생각 없이 T.V. 만 보고 있는 것을 들키기 싫어 딸이 들어오는 시간에 T.V. 를 끄기도 한다. 더 많은 빨래와 다림질, 설거지 등이 힘들다. 무엇보다 채식을 하는 딸과 조화롭게 맞추어 식사를 하는 일은 신경 쓸 일이 많아 좀 버겁다.


하지만 자신의 일을 믿음직스럽게 하고 있는 딸이 좋다. 자신이 쓰는 친환경 제품을 소개해 주고 반응을 물어주는 딸, 나의 브런치 매거진에 대해 조언해 주거나(덕분에 매거진은 일단 멈춤이다) 내 건강을 걱정해 주는 딸이 좋다. 그냥 집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만 봐도 좋다.


우리 딸이 독립하지 않고 집으로 들어와 주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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