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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봄날 Jul 25. 2019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50대 남편에 대하여

"너희 엄마 요즘 잘 있냐?"


남편은 몇 년 전부터 내게 엄마 같단다. 친구 모임에 다녀온 날 친구들도 그런다고 반가워한다. 친구들끼리 아내의 안부를 엄마 잘 있냐 한다며 킬킬 댄다.


"나 엄마 하기 싫어~~~

 자기가 아빠 해!!!"


남편은 완전히 착각하고 있다. 엄마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아내는 끊길 수 있는 관계이다. 은퇴한 남편이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아들처럼 굴다가는 잘릴 수도 있는 관계인 것이다.




남편은 서클 선배였다. 요즘은 동아리라고 하더군. 3년 선배이던 남편은 듬직해 보였다. 힘든 일이 생기면 그의 등 뒤에 숨을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직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내가 힘들 때면 등을 토닥여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등은 토닥여 주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진 못했다. 등을 토닥이며 내 얘기를 들어준 것으로 나는 위로받았고 그리곤 내가 일을 해결했다. 아이들이 잘했을 때면 환호성을 질러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었지만 나머지는 다 내 몫이었다. 시댁 일들도 내 책임이 커지기만 했고, 그냥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면서 점점 남편도 돌보게 되었다.


남편이 퇴직하고 나니 남편을 돌볼 일이 더욱 많아졌다. 그의 먹성, 입성(옷차림과 쇼핑), 건강, 취미 생활 등 돌보고 의논한다. 의논보다는 나의 지시와 보살핌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퇴직 한 남편은 가정에서 역할이 별로 없다. 보살핌을 받는 데에만 익숙하다. 그 나이 남자들이 다 왕자님으로 키워졌고 어머님은 아들을 떠받들기만 하신 분이니 나의 수고를 인정은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의 취미활동과  T.V. 시청 외에 집안일 같은 데에는 관심이 없다. 자연히 나는 짜증을 내고 갈등이 생긴다. 남편의 퇴직에도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나도 50대가 되어서야 취미활동을 시작했는데 대학 동기회의 사진반과 합창반이다. 사진을 찍으러 가는 날 남편의 일정을 미리 챙기고 그의 식사 준비를 해둔다. 늦어지기라도 하는 날은 그와 연락을 취하며 나의 상황을 알리고 약간의 애교도 떨어준다. 친구들 중에는 부부가 각각 생활을 즐기고 있다며 내게 왜 아직도 남편 눈치를 보냐고 핀잔을 주는 이도 있다. 


그런데, 사실 남편도 내 눈치를 본다. 늦어지면 알려주고 다소라도 큰 소비는 의논한다. 내 일정을 묻고 자신의 스케줄을 조절하기도 한다. 눈치를 본다는 것은 잔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상대를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혼해서 20년은 육아로 정신이 없었지만 그 이후는 부부의 배려가 더 중요한 시기이다. 아이들이 중심이던 가정이 부부 중심이 되면서 서로 눈치를 보고 배려하면서 돕다보면 편안해지는 시기가 온다.


물론 절대적으로 내가 손해다. 딸들이 가끔 엄마가 힘들겠다고 말할 정도로 나는 계속 바쁘다. 가끔(아니 자주인가?) 딸들도 도와야 하고 친정 부모님도 돌봐야 하고 시댁 일, 그리고 재무관리와 집안일. 작년까지는 과외수업도 했다. 거기에다가 나의 취미활동 모임까지 나는 일주일을 쪼개 써야 한다. 남편은 각종 취미활동과 모임 참석만 하면 되니 함께 늙어가는 마당에 내가 손해일 수밖에.


요즘은 남편이 집안 청소를 맡았다. 맡았다고는 해도 계속 자신의 일임을 일깨워주고 지시해야 한다. 어쨌든 자신의 책임이 되고 나니 집안 구석구석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지르지 않으려고도 한다. 예전에는 다용도실이 생전 가지 않는 공간이니 수리할 때 없애자고 한 사람이다. 이제는 그곳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할 줄 알고 빨래를 널어보면서 아이들이 어릴 때 빨래도 많았겠다며 힘들었겠다는 말도 한다.

남편이 집안일에 동참하면서 아내의 수고를 인정하고 함께 편안하게 사는 삶을 고민하게 됐다. 남편의 집안일 동참은 나의 일을 도와준다는 의미가 아니고 집 안에 없던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좀 길어지고 있긴 하다.


그런데 난 남편이 부럽다.

나도 엄마처럼 무엇이든 해결해 주는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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