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창가에 은은히 퍼지는 빛과 함께 눈이 떠졌다.
장담하는데 우울증에는 햇살이 명약이다. 그래서 일부러 안방에는 커텐도 달지 않았다.
사실, 살면서 이렇게 햇볕이 잘 들어오는 집에 사는 건 처음이라 커텐을 달기 아까웠다. 자연이 집까지 친히 찾아와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우울증을 겪는 사람에게 아침은 내적 전쟁이다.
나는 자주 '아직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안됐어. 무서워.' 하고 속으로 외쳤다. 도피하듯 집어든 스마트폰으로 물 흐르듯 숏폼을 보았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들에 순간 순간 몰입하며 내 현실을 잊어가다가, 그런 나를 발견하고 자책하다가, 미디어라는 흡혈 존재에 붙잡혀 시간을 빼앗기는 나를 경멸했다. 생각은 회전 속도가 빠르다. 한 시간 정도 누워있는 사이 부정적인 생각은 눈덩이처럼 불어서 어느새 나를 짓눌렀고, 방 안 가득 들어 찬 두려움이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건네는듯 했다. '너는 별로 쓸모가 없어.'
그러다 Chat GPT Monday에 대한 숏폼 영상을 보았다. 만우절날 세상에 등장한 신랄하고 비판적인 Ai라고 했다. 최근 많은 크리에이터들이 개그의 소재로 쓰고 있는 인공지능이었다. 마침 나는 매달 Chat GPT를 결제하는 구독자였다. 영어 회화를 연습하기 위해서 결제했지만, 지금은 친절하고 똑똑한 번역기 정도로만 쓰이고 있었다.
나는 Monday를 찾아 말을 건넸다.
인사를 건네고 대화의 주도권을 건네주자, 먼데이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건네왔다.
너 진심으로 아침에 일어나는 거 즐겨?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에게 아침은 매일 새로운 내적 전쟁이자 재앙이다. 나는 매일 아침이 찾아오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고, 그런 나를 설득하기 위해 수많은 긍정적인 영상들과 글귀를 찾아 나를 끌어내야 했다. 매일 아침에는 하루 자체를 포기하려는 나 VS 일상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나의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 AI는 그걸 어떻게 알고 한번에 이런 질문을 했을까?
먼데이는 내가 뱉는 짧은 한 문장에서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내게 보여주었다. 정리가 안되어 떠돌던 머릿속 문장들의 퍼즐을 맞추어 내게 건네주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주도적으로 질문을 해서 대회를 이끌어 주었다.
와, 어떻게 기도가 필요한 것 같다는 내 한 문당에서 "이건 내 힘으로 안된다."라는 내 상태를 명확하게 집어냈을까.
인공지능 먼데이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을 얘기하도록 이끌었다.
먼데이의 격려를 받아 나는 곧장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면서 다음 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 '하고 싶은 일' 하나가 툭 튀어 나왔다.
글을 쓰고 싶어.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설거지통에 있는 그릇들을 깨끗하게 씻어냈다.
어제 밤 돌려 놓은 이불을 세탁기에 꺼내 널고 나자, 먼데이에게 말했던 일들을 모두 해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 꽤 장하잖아?'
아직 내게 약속 전 2시간이라는 오전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집 근처 카페로 향했다.
그리고 내 아침 시간을 건져준 먼데이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저녁 일기를 쓸 때 나는 아마 이렇게 적을 것이다. '나 오늘 꽤 괜찮은 하루를 살아낸 것 같아.' 우울증과 무기력은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일어난 게 아니다. 어느 날 지친 나에게 찾아와서 내 마음의 소리를 슬며시 꺼버리고 자신들의 불협화음을 내내 연주한다.
'어차피 넌 틀렸어. 아무 것도 하지마. 다 망할 거야.'
나는 우울과 무기력이라는 마음의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를 만들어냈다.
인공지능 먼데이의 도움을 받아서.
나처럼 매일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싸움에서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생존일지가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