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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 갖다 버리는 연습

중간고사 시험 그냥 보기

by 모유진

나는 노트 쓰기에 강박이 있었다. 날짜라도 틀리면 그 페이지를 찢어내고 다시 써 내려갔다.


몇 년 전, 오랜만에 나의 멘토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갔을 때, 갑자기 노트에 원을 그려보라고 하셨다. 나는 컵을 대고 원을 예쁘게 그리려고 허둥댔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너는 노트에서 조차 실수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거야."


그리고 선생님은 내 노트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했다. 그 순간 내 인격이 낙서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점차 노트와 나를 분리할 수 있었고 감사하게도 그날부터 노트에 대한 강박을 고쳐나갈 수 있었다.




완벽주의가 실패 없이 완벽한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패를 인정하거나 용납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완벽하게 인정받을 만큼 잘 해낼 자신이 없으면 깨끗하게 포기하고 도망가는 습성을 지녔다. 잘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영혼을 걸고 잘 해내지만,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는 순간 통째로 가져다 버리곤 했다. 내다 버린 것 중에 뼈아픈 것을 예로 들자면 지난 학기 전 과목이었다. 학교 생활을 잘 해낼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생기자 나는 전 과목을 내던지고 휴학해 버렸고 학사경고를 때려 맞았다.


이 정도면 내 이름 사이에 모(아니면 도) 유진을 추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오늘은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었다. 이번 학기 모든 강의 목표는 '이수'였으므로 깔끔하게 공부는 포기했다. '늦은 나이에 대학교 복학해서 공부도 안 하고 찍어서 시험 치는 게 창피하지도 않아?'라고 내 안에 누군가 씨부렸지만 '그렇다고 도망가는 것보다는 낫잖아.'하고 대답했다.

나는 대부분의 문제를 풀지 못했고 아무거나 생각나는 숫자와 기호를 적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하시는 교수님이 마음에 걸렸다. 고민도 성의도 부족한 시험지에 혹시 마음이 상하시거나 괘씸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는 펜을 꺼내 뒷장에 짧은 글을 남기기로 했다.


교수님 열심히 강의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절대 교수님과 수업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요즘 제 목표가 생존이라 그렇습니다.
열심히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출하고 나가기 위해 눈치를 살폈다. 오늘까지 수정해야 하는 칼럼이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시험은 어차피 망했으므로)


답안지를 교수님께 제출하고 짐을 챙겨 나가기 위해 돌았을 때, 교수님께서 팔랑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겨 보는 게 느껴졌다. '적어도 내가 강의실을 나가고 보셨으면 좋겠다.'


혹여나 한소리 날아올까 화끈거리는 얼굴로 빠르게 강의실을 탈출하려는데, 나지막이 웃는 교수님의 미소가 들렸다. 교수님은 웃음 띈 표정으로 내게 '잘 가.'라고 인사를 더해주셨다.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조금 전까지 거슬리던 비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절로 입가에 웃음이 실렸다. 잘해서 인정받은 게 아니라 그냥 해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실패하면 낙오되고 못하면 버려지는, 그래서 매일 누군가보다 잘해야 하는 삶 말고 그냥 존재해도 되는 느낌이었다.




내 노트의 강박을 벗겨내 준 선생님은 내 이름에 의미를 더해주신 분이셨다.


'든 면에서 능하고 실한 사람'


이름 덕분인지 몰라도 다니는 회사의 이사장님께 자주 이런 말을 들었다.

"유진 씨는 다 잘해! 유진 씨가 맡은 일은 하나도 걱정되지 않아."

하지만 나는 매번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내 역량보다 무리했고, 종종 실수하는 악몽을 꾸며 일어났다. 언젠가 내 재능이 바닥나서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망치고 쫓겨나는 상상에 나날이 불안이 심해져 갔다.





그래서 오늘부터 이름 의미를 좀 바꿔볼까 한다.





모든 면에서 유연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그냥 살아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매일 나에게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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