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직접 만난다면, 정말 동행하듯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어떨까
드르륵, 탁.
테라스 문을 열고 축축한 슬리퍼를 신었다. 차갑고 찝찝한 느낌이 발을 감쌌지만 설마 내 마음보다 불쾌할까. 나무 평상에 걸터앉아 불빛이 새어 나오는 건너편 집을 바라보았다. 거실에 밥상을 펴놓고 식사 중인 한 가족의 모습이 커튼 사이로 비쳤다.
노란 장판에 세월이 깃든 소파.
비스듬히 기대어 리모컨을 돌리는 가장의 모습.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없던 짜증이 솟구치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면 머리가 뜨겁게 달궈질 것 같아 그대로 평상에 드러누웠다.
언제부턴가 가느다란 집을 지어놓고 세 들어 사는 거미가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움츠렸다. 달빛에 반사된 거미줄은 손가락 하나로 건드려도 툭 하고 끊어질 것이다. 몸에서 짜낸 실로 애써 엮어놓은 집이, 벌레 하나 걸리기 전에 무너져버리면 얼마나 슬플까.
동전 하나 내지 않은 채 한 켠을 차지한 세입거미를 치워버릴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이내 뻗은 손을 도로 가져와 눈을 덮었다.
"어차피 내게 어디 있어. 다 거저 받은 것뿐인데."
눈을 가린 팔 소매가 서서히 눈물로 젖어들었다.
'말일까지 잔금 못 치르면 방 빼고 나가세요. 계약을 지키지 못한 거니, 계약금은 돌려줄 수 없어요.'
쿵-
근무 도중 받은 문자에 심장이 잿빛으로 변해 떨어졌다. 떨리는 손으로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차례 받지 않고 끊어진 전화는 세 번째가 되어서야 걸렸다.
- 그래요. 내용 보셨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계약 내용 변경하면서 잔금 날짜도 미뤄진 거로 아는데요. 부동산에 가서 서류도 다시 작성하고 왔어요!"
- 나는 아직 그 계약서에 도장 찍지 않았어요. 이 달 말까지 빼줘야 하는 전세금이 있으니 어떻게든 마련하든지, 나가세요. 잔금 마련 못하면 계약금 못 돌려줘요. 아시겠어요?
"집주인 도장이 찍힌 계약서가 없는데, 무슨 수로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받아요? 부동산에서 분명 잔금 날짜 조정 해주실 거라고 했는데...!"
- 어쨌든 이달 말까지 잔금 준비하세요. 그 각서 받고 새로 쓴 계약서 도장 찍어 드릴 테니까.
뚝-
"하....."
4,400만 원. 은행 대출이 나올 때까지 반전세로 살기 위해 넣어둔 돈은 일반 계약금 시세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심지어 내 돈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직원을 위해 빌려준.. 그니까 내 능력보다 더 큰돈.
전세금을 낮추고 월세를 올려 조정하면서 한 번, 집주인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월세와 관리비 비율을 조정하며 두 번. 계약금을 넣고 선입주 한 뒤로 바뀐 계약서는 아직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집주인은 은행 대출을 받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이달 말까지 잔금 1억을 구해오라는 것이다.
와, 어떻게 일이 이렇게 꼬일 수 있지.
"나한테 집이 어떤 의미인지 알면서.. 나는 조금이라도 안정되면 안 되는 거예요? 왜 매번...."
'.........'
"위약금까지 물고 카페 정리한 지 얼마나 됐다고.. 아니, 그보다 전세 계약 사기로 600만 원 날린 것도 얼마 안 됐는데.."
"알아요. 날린 계약은 주변에서도 다 우려했던 깡통 전세였다는 거. 그대로 진행했으면 더 큰 피해가 있을 수도 있었다는 거... 다 안다고요."
'.........'
푸념하듯 마음을 쏟아 냈다.
스무 살, 처음 자립을 한 이후 집 없이 떠돌아다니기도 하고,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곰팡이 핀 냉골에서도 1년을 버텼다. 그 후로 이사만 7번, 처음 대출로 얻은 전세 집은 2년이 채 가기도 전에 집주인이 공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쫓아 냈다.
- 추워지기 전에 새로 구해서 방 빼주었으면 해요.
"예? 지금 11월인데요."
지금부터 추운데.. 그럼 당장 나가라는 말이 아닌가.
억울해서 여기저기 찾아봤지만 '불법 건축물 철거를 위한 공사' 때문에 나가라고 한다면, 세입자가 아무리 버텨도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라야. 하나님이 아무런 대책 없이 내쫓으실 리가 없어. 분명 너를 위한 집을 새로 구하셨을 거야."
"혹시.. 뉴스 안 보세요? 지금 전세 대란이라.. 용인에 전세 매물 자체가 없어요. 그런데 무슨 수로 LH가 되는 전세를 구하겠어요."
곳곳을 뒤져도 제대로 된 집을 찾기 어려웠던 나는 이내 몸져누웠다. 스트레스와 무기력으로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고, 줄줄이 빠진 대학교 강의는 연이어 F를 때려 맞았다.
"원망하는 거 아니에요. 원망하면 다 대가 치르는 거 이미 겪어봐서 알잖아요."
3년 전,
나는 이미 원망의 대가를 지불해 봤다.
누군가의 말대로 하나님은 기적처럼 내게 꼭 맞는 전세 집을 구해주셨고, 원망을 쏟아 낸 대가로 나는 냉동 창고에서 일해야 했다.
그때 배운 교훈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원망하지 말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 기도하라고 하셨지..."
또 울음이 목을 막았다. 짠맛이 혀끝을 절여오는 기분에 고개를 하늘로 쳐들어 올렸다.
"근데 기도조차 안 나올 때는.."
"성령님이 너를 위해 대신 기도해 주시지."
왁-!
"누구세요???"
테라스라 천장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실내였다면 분명 나는 펄쩍 뛰어 머리를 박았을 것이다. 그 정도로 놀랐다. 맥박이 심장에서부터 귓가를 두들겨 댔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빠르게 눈을 돌렸다.
그곳에는 달빛에도 빛나는, 실루엣조차 바른 자세로 보이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죄송한데.. 가 아니지. 여기 우리 집인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
신기하게도 낯설지도 무섭지도 않은 누군가를 향해 물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던 눈을 거두어 나를 향해 고개를 서서히 돌렸다.
"아라야."
따뜻하고 중후한 음색은 마치 내 심장에 귀가 달린 것처럼 마음을 간지럽혔다.
와... 내가 미쳤나?
이러다 사이비로 몰리는 거 아니야?
아니 근데.. 이건 누가 봐도..
"예수님이잖아..."
깜짝 놀라 멎었던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이내 다시 한번 급하게 들이 마신 숨을 다시 내뱉을 때까지 예수님은 그 자리에 묵묵히 계셨다.
이내 바람에 옷깃이 펄럭이는 두 팔을 펴고, 나를 향해 싱긋 웃어 보이셨다.
일단 무슨 상황인지 사태 파악을 해야겠다는 마음 보다 먼저 걸음이 움직였다.
귓가에 찬양이 들리는 듯했다.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앉아 계신 예수님 곁으로 서서히 걸어가 나도 몸을 숙였다.
텁-!
몸을 숙이자 셔츠 주머니에 넣어둔 라이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 아."
민망해서 뭐라고 변명이라고 할까 싶던 나는 머쓱하게 예수님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나를 향해 팔을 벌리고 계셨다.
'그래.. 어차피 예수님이라면 이미 다 알고 계셨을 거 아니야.'
다시 예수님을 향해 몸을 낮추던 그때,
퉁, 퉁, 퉁- 텁.
포켓에서 담뱃갑 마저 스르륵 미끄러져 예수님의 무릎을 치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으.. 죄송해요, 예수님 여기 사실 제 흡연 구역이라서요...."
예수님을 직접 만난다면, 정말 동행하듯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어떨까 생각하며 써보는 소설.
혹시 그쪽이 예수님이세요? 에피소드 1 마침.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