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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나 Dec 29. 2021

생과 죽음 사이

나는 겨울에 태어났다. 

그것도 12월 끝자락에... 

나는 12월생인 게 늘 억울했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1월에 각종 모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1월생인 회원들의 생일을 챙겨 주면서 모임이 끈끈해진다. 

하지만 12월 생일자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라 다들 바빠 제대로 생일을 챙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학창 시절에는 겨울방학에 생일이 있어 친구들에게 제날짜에 생일을 챙겨 받기보다 성탄절 즈음에 이래저래 묻어간 적이 많았던 것 같다. 

회비는 꼬박꼬박 내고 친구들의 생일선물도 정성스럽게 준비하여 건네는데 내 생일에는 준 것에 반도 못 받은 듯하였다. 


 이다음에 자식을 낳으면 여름방학, 겨울방학 달에 아이를 출산하지 않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딸 둘이 모두 1월 6일, 1월 15일생이라 딸들도 어미의 운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편 또한 1월 12일생이다. 우리 가족은 12월과 1월에 모두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이 한겨울에 훅 왔다 지나가 생일 선물도 겨울용품이 많다. 


생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흔적의 날. 

어느 시인은 말했다. 생일이란 내가 살아온 날에 대한 매듭이며, 내가 살아갈 날에 대한 약속이라고....


어느해 11월 초겨울이 시작되는 달,  한 목조건물에 산다는 40대 중반 남자에게 전화가 왔다. 이곳 임시거처에서 두 어 달 살고 있는데 세도 못 내고 먹을 것이 없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전화상으로 들리는 남성의 음성은 떨리고 매우 미안한 듯하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듯하였다. 


그 남자가 사는 곳은 우리 시 동쪽 끝자락에 있는 면으로 겨울에는 매우 춥고 일 차선 도로로 길게 들어가야 했다. 길옆에는 계곡이 흐르는 곳도 있다. 봄 · 여름은 푸르름의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가을에는 은행나무가 즐비하여 도로가가 황금밭이 되는 곳이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서 그 남자가 사는 곳에 가려면 40분 정도 걸려 출장을 가기에 다소 망설여졌다. 당장에 먹을 것이 없다는 그 남자의 절박함이 전해져 오후 4시가 넘어 그곳으로 향하였다. 


초겨울을 향하는 그곳은 겨울 채비를 시작하는 나무들이 앙상하여 황량함이 묻어나 있었으며, 바람까지 불어 쓸쓸함이 더 느껴졌다. 

그 남자가 사는 곳은 암환자들이 요양차 잠시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8평 정도 되는 목조주택이 뜨문뜨문 있는 곳이었다. 대부분이 비어있었다. 이제는 임시거처로 일용직 근로자들이 월세로 사는 곳이 되었다. 


대로변에서 꽤 들어가니 왼쪽에 철제로 만들어진 대문이 열려 있었으며, 마당 왼쪽에 묶여있는 큰 개가 짖어대는 곳을 지나자 막다른 곳에 산이 보였다. 산 밑 응달진 곳 가장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는 위치에 그 남자의 방이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싱크대가 보였고, 싱크대 밑으로 소주병이 열댓 병 있어 놓였다. ‘순간 아 알코올 중독인가?’라는 생각과 ‘그렇다면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함께 방문을 했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회용 가스버너에는 나무 손잡이가 달린 알루미늄 냄비가 하나 놓였고 그 옆으로 소형 냉장고가 있었다. 

맞은편에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방바닥 작은 소반 위에는 빛바랜 A4 용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창문틀에는 성모상과 촛대가 놓였다. 


그 남자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듯이 머리와 온몸을 조아리는 듯한 행동과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빨리 방문해 주실지 몰랐습니다. 어떡하든 살아 보려고 했는데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술에 취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술 냄새가 나는 듯하였다.    

“술을 조금 드신 것 같네요” 하자

“어젯밤에 잠이 안 와서 조금 마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대체 뭐가 죄송하다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본인은 충청도 태생이며, 신부가 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를 중퇴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어느 시설에서 일을 도와주다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다고 하였다. 

막노동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찬 바람이 불면서 일감이 떨어져 돈이 하나도 없고 쌀이 없어 시청에 전화했다고 하였다. 조금만 도와주면 봄이 되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였다. 


나는 자꾸만 방안에 놓인 소반에 위에 있는 A4용지에 시선이 갔다. 그래서 소반에 놓인 A4용지는 무엇이냐고 묻자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를 좋아해서 조금씩 습작을 한 것이라며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무슨 글을 썼을까 싶어 건네받은 원고를 눈으로 쓱 읽어보았다. 무슨 소설을 쓴 것 같은데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 유명한 작가가 기술해놓은 듯한 섬세함에 내 눈을 의심하였다. 


진정 이 글을 쓴 사람이 이 남자인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언제부터 적어 놓은 글인가요?”

“오래전부터..., ”

그 남자는 밤에 잠이 안 올 때 머릿속에 생각나는 대로 적어놓은 글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잠시 주춤했다. 


요즘 글쓰기가 열풍이라 글을 잘 쓰기 위해 글쓰기 아카데미며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고 난리를 치는데 배움이 짧은 이 남자의 수려한 문체는 뭐지? 놀라웠다.

“글을 무척이나 잘 쓰시네요. 묘사력이 대단하세요.”라고 하자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글을 써와서 그런 것 같아요” 그 남자의 눈이 반짝거렸다. 글을 무척이나 쓰고 싶어 하는 분이시구나. 그런데 육체적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였다.


당장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해서 가지고 왔다며 쌀 10킬로를 건네주었다. 이 남자가 가장 큰 어려움과 그것을 극복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통합사례관리대상자로 선정을 할지 서비스 연계 대상자로 선정을 할지 회의를 거쳐 결정되고 그 이후에 지원계획이 수립되는 것을 찬찬히 설명해주고 첫 번째 만남을 마쳤다.


해가 짧아져 초겨울의 어두움이 내려앉는 길을 따라오면서 그 남자의 상황을 다시 한번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첫 번째 만남에서 그 남자에게서 기초 생활 해결에 어려움과 밀린 월세, 알코올 의존증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것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마저 읽을 수 있었다.


사례회의를 거쳐 기초 생활 해결의 어려움 해소와 안정적인 주거지로의 이사는 어느 정도 해결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알코올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나는 정신과에서 근무하였던 정신보건사회복지사로서 알코올 중독의 성향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알코올 중독은 술만 안 먹으면 정상이다. 

하지만 술을 끊기가 많이 힘들다는 것을 정신과 병원에서 수없이 봤다. 만성적인 알코올 의존이 있는 분들의 반복되는 입·퇴원은 상상을 초월한다. 

술 때문에 강제입원을 했는데 정신과 병동 내에서도 요구르트를 삭혀 술을 만들어 몰래 마시는 것이 다반사였다. 


나는 그 남자의 상황을 집 안에 있는 술병과 그의 몸에 배어 있는 술 냄새로 알아차렸다.

정신건강복지센터, 고용복지플러스센터 담당자와 행정복지센터 담당자와 긴급사례회의를 해 통합사례관리대상자로 선정하여 각 기관별로 서비스 계획을 하고 장단기 목표를 설정하여 그 남자의 어려운 부분을 해결하기로 의기투합하였다. 


가장 먼저 긴급지원으로 기초 생활을 해결하도록 지원하고, 지원된 금액으로 밀린 월세가 해결되었는지 확인해 혹여 긴급지원금이 그 남자의 술의 소비를 늘리는 도구가 되지는 않은지 살폈다. 


알코올 관련해서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재방문해 그 남자의 상황을 보고 알코올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는 있는지 물었다. 알코올에서 벗어나려는 몇 번의 노력은 하였으나 지속하지 못했다고 했다. 거듭되는 상황에 그 남자와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논의하였다. 


그 남자는 알코올에서 벗어나기 위해 본인 스스로 노력해 조절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로 술을 끊는 것은 매우 어렵기에 전문의의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하였다. 

다행히 그 남자는 모두 해보겠다고 하였다. 지역 의료기관을 연계하고 주치의와 상담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했다. 


그 남자는 예약된 시간에 병원을 방문하고, 처방된 약을 먹는 노력을 하였다. 술이 생각나면 글을 쓰고, 쓴 글은 반드시 상담 시 한번 읽어봐 달라고 하였다. 

그 남자의 노력하는 모습이 고마웠다. 어느 날 가정방문을 했더니 집 앞에 빨간 스쿠터가 한 대 있어 “안 보이던 스쿠터가 보이네요? 옆집이 비어 있었는데 이사 왔나 보네요?” 했더니 옆집에 사람이 들어온 것은 맞으나 스쿠터는 근처에 같이 일을 하던 친구가 잠시 빌려준 거라 하였다.


“스쿠터를 타고 다니시나요? 여기는 다른 곳보다 기온이 낮아 빙판이 많은데.....”라고 했더니 “들어오는 길에 있는 가게에만 다녀와서 걱정을 안 하셔도 되어요. 

추워서 밖에 나가는 일도 거의 없어요” 내 걱정의 말에 이렇게 안심을 시켜주었다. 


“겨울에 스쿠터 타는 거 위험하니깐 운동 삼아 걸어서 가게도 가시고, 병원에 다닐 때도 꼭 가게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330-1번 타고 다니세요”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 남자는 빙그레 웃으면서 “선생님이 참 걱정이 많으시네요”라고 답하였다. 


“겨울에는 조심해서 걸어도 빙판길을 당할 재간이 없으니 제가 부탁을 드릴게요. 스쿠터는 겨울 지나고 나서 타시겠다고 약속하셔야 해요”라고 했더니 알겠다고 함께 방문한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나에게 약속을 철석같이 하였다. 


나와 만난 시간은 짧지만, 그 남자의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것 같아 다행이었다. 겨울이 지나 봄이 올 때 전세 임대주택이 선정되어 전철 가까운 곳에 집을 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 남자 참 복이 있는 사람이구나 이런 통합사례관리사가 어디 있을까?” 나 자신을 칭찬하였다.


어느새 12월 중순을 지나 종결을 앞둔 이용자들과 종결 상담을 하고, 종결 회의를 하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성탄절이 코앞으로 다가와한 해를 마무리를 잘하라고 그 남자에게  전화하였다. 

 “선생님 바쁘실 텐데 전화까지 하셨네요. 병원도 잘 다니고 약도 잘 먹고 있어요. 약을 먹었더니 술 생각도 조금 덜 나네요” 남자는 고마움을 전하였다. 

연초에 방문해서 후원품을 전달하겠다고 하였다. 스쿠터도 타지 말라고 거듭 강조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틀날 12월 29일 토요일 내 생일 당일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도 먹고 케이크에 촛불도 끄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새해 업무를 시작하면서 2018년 1월 3일, 그 남자에게 전화하였다. 나와의 만남 이후 전화를 받지 않은 적이 없는 그 남자였다. 전화 연결음은 들렸지만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도 전화가 되지 않았다. 그다음 날에는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에게 함께 방문해 달라고 요청하고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날은 예전에 갔던 그 길이 아닌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에게 말했다.

 “오늘 왠지 마음이 그래요. 뭔가 불안감이 엄습하는 이 느낌은 무엇일까요?” 

 “선생님 어떤 날은 그런 날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 남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는 오른쪽 골목길은 갈 때마다 헷갈렸다. 그 집으로 들어가는 비슷한 골목이 많았다. 나는 비슷한 골목을 기억하기 위해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50m 정도에 성모상이 있는 왼쪽 집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했다. 

어떤 날은 그 성모상을 미처 못 보고 지나갔는데 그날은 멀리서도 그 성모상이 눈에 확 띄어 한 번에 그 골목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골목길을 지나 그 남자의 집 앞에 갔다. “박재가 님, 박재가님, 아무도 안 계세요?”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오면서 느꼈던 불안감이 맞는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 때 12월에 이사 왔다고 했던 60대 초반의 남성이 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그 사람 죽었어요. 아까 오면서 못 봤어요? 맞은편 전봇대에 박혀있는 스쿠터?”

“무슨 말씀이세요? 죽다니요. 누가요?” 

“거기 살았던 젊은 사람이요. 지난주 토요일에 눈길에 스쿠터 타고 나갔다가 커브 틀다가 330-1번 버스랑 부딪혀서 즉사했어요. 경찰도 왔다 갔다 했구먼...” 


나는 그 자리에서 어지럼을 느끼고 흔들거리다가 정신을 차리고  “제가 지난주에도 통화했고요. 그때 스쿠터도 안 탄다고 약속했어요” 이웃집 아저씨에게 외쳤다.

 “나가다가 봐 봐요. 여기에 있던 스쿠터 처박혀 있을 테니.....” 

 “그분은 가족들이 없는데 누가 장사를 지냈어요?”

 “나도 모르죠. 어떻게 장례를 했는지는.....”


 정신건강복지센터 담당자와 나는 순간 망연자실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차를 타고 사고 난 장소를 가보았다. 정말 그 남자의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말했듯이 빨간 스쿠터가 전봇대 옆에 처박혀 있었다.


나와 동행했던 선생님과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사무실에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돌아왔다. 오자마자 공문을 뒤져 보았다. 행불자 사망 내용이 소상하게 공문에 남겨 있었다. 그 남자의 이름이 있었다. 


사고 일시 2017년 12월 29일 그날은 바로 나의 생일이었다. 한쪽에서는 이 세상에서 태어난 것을 기념하여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한쪽에서는 울어주는 자 한 명도 없이 쓸쓸히 이 세상과 작별하다니...... 


 그 남자는 여린 사람이었다. 눈망울이 늘 촉촉이 젖어 있었다. 없는 살림인데 굿네이버스에 월 2만 원의 후원금도 내었다. 어떡하든지 살아 보려고 애썼다. 따뜻한 봄이 찾아오면 집도 이사하고, 본인한테 맞는 일감도 찾아 사람답게 살려고 하였다. 


 이렇게 맥없이 사망하는 이용자와의 이별은 오랜 여운으로 남는다. 다시 그 남자가 살았던 그 길을 갈 때, 빨간 스쿠터가 내 옆을 지나갈 때, 나는 그때 그 이용자를 위해 최선을 다했는지 이용자의 바람에 충실하였는지지..... 고개를 숙인다.


그 남자가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미완의 글은 무엇이었을까? 

12월 29일 내 생일만 되면 그남자가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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