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보겠다는 다부진 마음을 먹고,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인 스터디 카페에 노트북을 가지고 가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오래된 노트북을 가지고 카페에 갔다.
노트북이 엄청 오래된 거라 부피와 무게가 많이 나갔다.
조금 과장해서 부팅 만 3박 4일이 걸리는 듯하였다.
옆에 앉아 있는 대학생이 의식되었다.
‘무슨 아줌마가 스터디 카페를... 노트북도 대따 큰 거 가져와서 컴퓨터 작업을 하겠다는 거지?'라는 표정이 느껴졌다. 순간 스스로 초라함을 느꼈다.
그래도 아줌마 정신으로 꿋꿋하게 5시간이나 내 평생 처음 가보는 스터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글의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때는 턱을 괴고 창가를 바라보면서 멍을 때리며 머릿속을 비었다.
한 편의 글이 완성되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아하 이래서 스터디 카페에 와서 공부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래된 노트북과 작별을 고하고, 내 전용 노트북을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요즘 LG에서 나오는 그램 컴퓨터가 대세인데 가격이 장난이 아니었다.
기능이 많아도 내가 사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 그램만큼은 아니더라도 휴대하기 쉬운 무게가 가벼우면서 기능이 많지 않은 것을 사고 싶었다.
인터넷을 뒤졌지만 뭐가 뭔지 몰라 지인에게 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꼼꼼한 지인은 노트북을 어떤 용도로 사용할지, 내장 하드가 얼마나 나가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나를 매장에 데리고 가서 다양한 노트북을 보여주었다.
여러 가지 노트북의 기능과 가격, 성능 등에 설명해주고 직접 만져보고 들어 보게까지 하였다.
그러고 나서 구매 최종 결정은 충분히 고민하고, 인터넷몰에서 비교견적을 살펴보고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순간 나는 그럴 바에 '대금은 내가 지불하고
그냥 지인이 적당한 인터넷몰에서 구매까지 해주면 좋겠다'는 짧은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그것까지 부탁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기에....
나의 친절한 지인의 도움으로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60만 원대 노트북을 사기로 결정했다.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제품을 다양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비교하여 가장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여기저기 온라인몰을 기웃거렸다.
처음 노트북 정보를 구할 때 지인이 전자제품 매장에 데리고 가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 덕분에
노트북의 사양에 대해 조금 알 수 있는 눈이 떠져 있었다.
참 신기했다. 며칠 전만에도 하나도 몰랐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하느라 내가 인터넷몰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노트북을 지인에게 보였 주었다.
(이 중간선 어떻게 삭제하는지 모르는데 혹시 아시는분 알려주세요)
지인은 나한테 적당한 노트북을 잘 골랐다며,
노트북이 도착하는 대로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세팅까지 해주겠다고 본인 집으로 배송을 하라고 하였다.
드디어 배송되었고, 세팅이 다 되었다고 퇴근길에 들리면 된다고 이른 아침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앞으로 얇은 노트북을 스터디 카페에 가지고 가 폼을 잡을 수 있게 되어 아침부터 마음이 설렜다.
며칠 동안 노트북 구매를 도와주기 위해 애쓴 지인이 참으로 고마웠다.
생애 처음 내 전용 노트북을 고르면서 나의 구매욕구를 최대한 존중하는 지인의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 어떤 식으로 했는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여전히 갈등이 되고
힘든 과업이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이다.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은 ,
사회복지 영역에서 오래전부터 이용자가 가진 자기 결정에 대한 가치와 욕구를 하나의 권리로서 존중하여 왔다.
그러나 이용자에게 자기 결정권의 원칙은 적용할 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상황에 따라 사회복지사는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의 원칙을 제한해야만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온정주의는,
사회복지사가 이용자의 의사를 재량적으로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적으로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은 이용자의 능력, 법, 관습, 타인의 권리, 자신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나 생명에 위험을 초래하는 결정 등에서 어느 정도로 제한을 받게 된다.
즉,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는 결정은 사회복지사에게는 어려운 문제이며 윤리적 갈등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몇 년 전 자녀가 다섯이 있는 7명의 식구가 축사에 거주하고 있어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30대 중반의 부부는 자녀를 양육할 능력이 전혀 없었으며, 게임에 심취되어 자녀가 거의 방임된 상황이었다.
이 부부는 다섯 명의 자녀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하면서, 여섯 번째 자녀를 낳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하여 온 마을의 복지기관이 긴장을 한 적이 있었다.
결국 남편이 불임수술을 결정하였지만, 설득하는 과정에 담당자들이 상당히 윤리적 갈등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예가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의 원칙과 온정주의 갈등 상황인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개입해서 이용자가 자기 결정권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모든 사회복지사가 실천 현장에서 고민되는 부분이다.
이용자가 자기 결정권을 발휘하는데 사회복지사의 개입은 참으로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사... 참으로 많다.
그 많은 사회복지사의 역량이 같을 수는 없으며,
또한 사회복지 실천 현장에서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기다려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경우가 있다.
어떤 때에는 단호하게 이용자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미명 하에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복지사가 이용자의 아바타로 변신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 과연 나는 전문가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과연 전문가 사회복지사는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옹호하고, 이용자가 자기 결정권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게 할까? 이용자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끊임이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의 선택과 결정 상황에서 이용자의 선택을 존중하며,
때로는 이용자의 결정이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며,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이용자의 결정을 존중하며, 이용자의 의사를 존중해야겠다고
내 마음을 붙들어보면서
쓰고 싶지만 쓰기 어려운 주제... 글로 나의 작은 생각을 표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