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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DORLIVE Mar 11. 2020

오늘의 내일, 내일의 오늘

아주, 개인적인 부산의 현재에 대한 기록

저는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생활해 왔습니다.  '도시는 공기까지 자유롭다'라는 중세의 격억으로부터 여러 가지 도시에 대한 찬양, 비판, 비난 등이 많이 있지만 저에게 있어 도시는 언제나 그 자리에 원래부터 있었고 내일 지구가 망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을 당연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학교 수업시간에 '도시'에 대한 수업부터 '부산'에 대한 수업(담당 교수가 지금 교육감인 김석준 교수였습니다)까지 수강을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에는 당연한 거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본다는 아주 너그러움을 가득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무엇일까요? 조금 서글픈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늙는다는 것은 조금 현명해진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물론 이 말은 개인적인 느낌이고 절대적인 '참'이 아닙니다. 반론은 광화문에 가면 많이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했던 것을 소중히 여기고 새롭게 바라보기도 합니다.

저도 학생을 벗어나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진짜 어른의 성장 시간을 거치면서 당연하다고 여기던 것이 더 이상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새롭고 소중하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상 중에는 <부산>이라는 도시도 있었습니다.



시작은 책 한 권이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혹은 토요일에 신문에 실리는 신간 소개에 '권기봉'작가의  <다시 , 서울을 걷다>이라는 책의 서평을 읽으면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도시에 대한 이야기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서울에 관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 재미와 흥미 있는 이야기를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견디지 못해서 결국 책을 구매해서 읽었습니다.(특이하게 서울 출장을 다녀오는 KTX에서 다 읽었습니다). 책을 다 읽은 소감은 상당히 충격이었습니다 -책 내용이 아카데미상 10번 받을 만큼 너무 감동적이거나 선데이 서울만큼 폭로적이어서 충격적인 게 아니라- 도시란 원래 만들어져 있던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모여서 만들어졌고 그 속에는 개인/사회/국가의 삶, 역사, 생활 모든 것이 녹여져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제가 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서 매번 거대담론만 언급하며 아는 척하고 있는 저의 위선적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럽기 그지없었습니다. 동시에 이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열망도 동시에 생겼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했습니다. '나도 '권기봉'작가처럼 도시에 대해서 멋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라는 욕망과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니 '부산'토박이답게 '부산'에 대해서 써보자'라는 현실적 타협안을 가지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 서점 검색창을 통해 '부산'이라는 단어를 집어넣고 검색을 누르자 나도 모르게 '아싸~'하는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짧은 출간 목록, 관광 GUIDE와 도시 소개에서 방향을 잃은 제목들 모든 것이 '블루오션'이 열렸다고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블루오션'이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구조적 문제였고 하나는 개인적 문제였습니다.  우선 구조적 문제는  대한민국 도시는  도시들 간에 특색과 차이가 없으며  '서울'이라는 전 세계에 몇 번째로 손에 꼽히는 '메트로 폴리스'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되면 대부분의 대한민국 도시에 대한 서술이 끝나버린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대한민국 도시들은 서울의 영향력 아래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고유한 역사를 무시한 체  to be Seoul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차별성이 거의 없는 도시가 되고 만 것입니다.(실제로 도시에 대한 책을 보게 되면 90% 이상이 서울에 한 책이고 나머지 10%는 대한민국 건축물 관련책입니다. 지방 도시에 대한 책을 찾으려면 여행 GUIDE 책을 검색해야 합니다). 두 번째 문제는 제가 주제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40여 년을 살았다는 점을 빼고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제가 얼마나 모르냐를 알기 시작하면서 참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코 시간이 현명함/지식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서울 관련, 건축 관련 책 몇 권에서 본 '적산가옥'이 남포동에 있구나, 근대 건축물이 어디에 있구나 등등의 뜬 구름 잡는 소리 외에는 별달리 할 말도 없었고  '전공자가 아닌 아마추어 개인이 뭘 할 수 있겠어'라는 핑계는 저의 게으름을 합리화해줄 뿐이었습니다.


또 책입니다. 시작과 문제를 던져준 게 책이었다면 해결을 던져준 것도 책 , 그것도 똑같이 '서울'에 관한 책입니다. 고문헌 학자인 '김시덕'씨의 <서울선언>과 <갈등 도시> 연작입니다. (2권이지만 연작시리즈이기에 하나로 봐도 무방합니다)

'김시덕'씨의 책을 읽으며 떠올린 생각은 반성이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문제는 실력도 없으면서 거대 담론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부산>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역사,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 대해서 알려고 공부도 하지 않았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문화적으로 부산을 알아볼까, 역사적으로 부산을 알아볼까 하는 오만한 생각을 하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망각을 해버린 거 같습니다.

'김시덕'씨의 책을 읽으면 처음 드는 생각은 저자의 성실함입니다. 얼마나 걸었는지를 가늠하지도 못할 만큼 서울의 곳곳을 직접 걸으며 답사하고 사진을 찍고 조사를 한 내용들을 읽으며 저자의 성실함에 절로 고객 숙여집니다. 두 번째로는 '대서울', '메갈로 폴리스'등의 거대 이야기는 하지만 실제로 저자의 중요한 이야기는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소소한 모습과 역사가 반영된 도시의 현재 모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제가 이야기했지만 도시는 개개인 삶의 역사가  농축되어 나타나는 곳입니다. 김시덕 씨의 책은 이런 농축된 도시의 모습에 집중하고 동시에 사라짐을 이해하면서 안타까워합니다.

그렇습니다. 저한테 필요한 거는 거대한 담론, 역사, 이론이 아니라 지금의 도시의 모습을 기억하고 감상하며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시덕 씨의 책은 갈팡질팡하는 저에게 길을 알려주는 길잡이 같은 책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한 동네/아파트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연인지 몰라도 주변이 매일매일 재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바뀌고 있습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있던 단독주택촌은 이제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고, 낮은 아파트 단지는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뀌려고 매일 이사 차량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큰길을 건너가면 사람들은 이미 이사 가고 철거 차량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마을도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누군가의 삶이 사라지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일의 과거일 수도 있지만 내일의 오늘 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현재를 기록하려고 합니다. 개개인의 삶을 직접적으로 기록할 수는 없지만 삶이 담겨있는 <부산>이라는 도시를 기록하려 합니다. 비록 전문가적 식견은 없을지 몰라도 도시를 기록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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