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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DORLIVE Apr 07. 2020

골목과 성벽 사이에서

거제 제2 개발지역 답사(1)

도시는 사람의 일생과 비슷한 경로를 겪습니다. 신생아 같이 새로 생긴 도시는 인구유입과 개발을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지만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든 사람의 운동능력이 점점 쇠락하듯이 도시도 정점이 지나면 인구 감소와 도심의 공동화와 함께 점점 쇠퇴해 나갑니다. 그렇지만 사람과 도시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운동과 성형, 과학의 도움을 받더라도 나이먹음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지만 도시는 산업을 유치하고,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중반까지 활동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폐터>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는 용어로 유명합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기술혁신'으로서 낡은 것을 파괴, 도태시키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변혁을 일으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업이 발전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기회를 창조한다는 내용입니다.


도시도 '창조적 파괴'를 통해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낡고 오래되어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으면서 역사적 가치가 없는 건물, 낙후되고 범죄의 위협에 많이 노출된 마을 등 도태되는 요소를 변경, 제거하여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 걸맞은 부富를 발생시킵니다. 이 과정을 우리는 '재건축', '재개발'이라고 부릅니다.


'부산'도 항상 '창조적 파괴'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낡은 아파트, 단독주택이 있던 자리에 거대한 주상 복합 아파트가 세워지기도 하고 공터는 빌라, 상가 건물로 바뀌기도 합니다.


우연히 보게 된 <거제 제2 개발지역> 강제집행에 관한 기사(부산일보 1월 30일)는 저에게 묘한 여운을 줬습니다. '재건축, 재개발'과 관련된 여러 가지 논쟁이 있지만 제가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마을이 사라지는 현장과 갈등의 공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흔하지 않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부연 설명을 하면 제가 거주하는 곳 주변의 재개발/재건축 지역들은 이렇게 갈등이 드러나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첫 번째 부산에 대한 기록은 갈등 속에 사라지는 마을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저의 답사는  사직운동장에서 출발해서 재개발 구역을  돌아보는 코스를 선택했습니다.

먼저 육교 위에서 해당 지역을 한번 조망해보고 길을 건너서 재개발 구역으로 다가가자 멀리서 봤을 때 멀쩡해 보이던 건물들이 일부 철거가 진행됨에 따라 황량한 뼈대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처음 저를 반기는 문구는 경비업체(혹은 용역업체일 수도 있습니다)의 이주가 끝난 공가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문입니다.  이주가 시작된 후  마을을 지켜주는 것은 주민이 아닌  경고문인 거 같습니다. 색이 바랜 아파트 분양광고 벽보가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갈등을 만나게 됩니다. 재개발조합의 현수막에는 '법치주의와 자본주의' 국가답게 '법과 배상책임'으로 강력한 응징을 예고합니다. 동시에 기존 집행부가 탄핵(?)되었는지 새 조합 집행부 탄생을 알립니다. '빠른 일반 분양과 비례율 대폭 상향'은 너무 솔직한 공약이어서 원초적인 느낌이 듭니다. 갑자기 생긴 궁금증은 '국내 3대 로펌'이 어디일까?'입니다.

반격이 시작됩니다. 대책위원회는 재개발조합이 투기꾼 조합이라고 하며 보상금액의 문제를 제기합니다. 갈등의 본질이 '돈'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현수막을 보면 반격의 무기도 '자본주의'입니다.

'철거대책위원회'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글과 갈등의 전쟁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깃발, 철조망 위를 덮은 '이주 촉진센터'의 <경고 요청문>은 의도적인 내려찍기와 권력,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입니다.

'강제집행'이 되었다는 기사를 참고하면 법적으로는 '이주 촉진센터'가 승소했다는 사실을 첨언합니다.


갈등을 뒤로하고 첫 번째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시아드로'라는 도로명을 보며 골목을 들어가니 절반 이상 철거된 단독주택과 공권력이 이주하지 않은 주민들을 위한 경고문이 저에게 친절한 안내를 해줍니다. '공가'라고 락커로 갈겨쓴 글자에서 눈높이를 올리면 주민들이 떠나고 얼마 후에 포클레인이 들어오면 사라질 예정인 간판들이 저 같은 이방인에게 마을 주민의 흔적을 기억해달라고 합니다. 8~90년대 동네에서 많이 봤던 간판 서체로 쓰인 '연코너, 숙녀/쥬니어복, 종합 메리야스'가 정겹게 보입니다.  시골 장터에서 봄직한 '신용장유상회'라는 건물에 직접 쓰인 상호는 <김해 장유>에서 부산으로 이사 오신 분이 하시던 가게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진간장, 국간장, 물엿, 전화주문, 신속(배달)'이라는 문구 옆에 '부산주차장'이라는 입간판을 보니 주차장을 같이 하셨는지 아니면 상회를 오래전에 그만두시고 주차장을 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골목의 길이 막혀서 다시 돌아서 나오던 중 답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만납니다.  

반쯤 철거된 단독주택과 고층 주상복합의 대비는 파괴되는 현재의 모습과 '창조적 파괴'를 통해 만들어질 미래의 욕망이 너무나 잘 보였습니다.  너무나 작게 보이는 2층짜리 단독주택은 1~2년 내에 배경이 되는 주상복합처럼 바벨탑이 되어 우뚝 서있게 될 겁니다. 그때 다시 한번 방문하여서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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