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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DORLIVE May 31. 2020

골목과 성벽사이

거제 제2 개발지역 답사(2)

큰길을 따라 걸어가면 사거리를 만납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제가 답사하고 있는 재개발 구역이지만, 직진을 하면 '법'을 시행하는 '부산지방법원'과 '부산지방 검찰청'이 있습니다. 고층 아파트 사이에서 사법권력의 실루엣을 보면서 '법'이 바라보는 '창조적 파괴'를 생각해 봅니다.(사진은 재개발 구역 중간지점에서 찍었습니다)

오른쪽으로 돌아서니 재개발 지역을 가리고 있는 성벽과 정면에서는 보이지 않고 측면에서만 볼 수 있는 갈등이 있습니다.


재개발 메인 지역은 부산 특유의 언덕을 올라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초입에 들어서자 재개발에 제외된 구역 상가에 줄지어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이 저를 반기고 있습니다. <카카오맵>을 통해 2014년 1월의 모습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떡집, 횟집, 동네슈퍼'가 있던 자리가 '강남,래미안,퀸'등의 욕망을 담은 상호의 부동산 중개업소로 변해있고 '남도 돼지국밥'과 '하바드치킨'만이 과거를 기념하듯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철거되지 않은 주택이 보이고 할머니 한분이 아래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계셔서 호기심에 다가가 보니 집 텃을 노부부가 가꾸고 계셨습니다.(사진을 제대로 못찍어서 전봇대가 어르신들을 가리고 있습니다). 단독주택 지역에서 가끔 만날수 있던 목가적인 풍경이지만 도심 곳곳이 재개발로 콘크리트 덩어리가 되면서 이제는 도시 외곽으로 차를 몰고 나가서 비용을 지불해야만  만날수 있는 모습입니다.

의외의 철거 대상인 '절'을 만났습니다. 한글로 써져 있는 '수호사'라는 사찰명과 함께 보살님들의 기도와 소망을 받아 주었던 곳이지만 2층 대웅전 앞에는 시간이 멈춘 연등만이 띄엄띄엄 걸려있어 겨울의 스산함만 느끼게 해줍니다.(답사는 2월 2일 입니다). 뒷편으로 올라가보니 정면 아래쪽에서 보이지 않는 재미있는 장면을 만납니다. 절에서 기도를 받아주던 여러 부처상들이 일렬로 나란히 서 있습니다. 부처님들은 어디로 가실까요? 새로 생기는 절로 갈까요? 아님 철거가 되어 사라지실까요? 부디 부처님들이 받으셨던 사람들의 기도, 소원과 희망이 이뤄 지기를 저도 빌어 봅니다.

부서진 간판에 '알뜰수퍼'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이미 폐점을 했지만 맥주광고 포스터가 문에 붙어있고 '담배'라는 간판과 작동되지 않을 자판기도 보입니다. 가게 앞에 있는 평상을 보니 여름 저녁 동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새우깡을 안주 삼아 맥주, 소주를 마시고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노는 모습을 상상하는 저의 모습이 너무 TV에서 봄직한 스테레오 타입만을 생각하는 듯 해서 부끄럽게 느껴집니다.

빈집으로 알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할머니 한분이 외출을 위해 집에서 나오셔서 저와 마주칩니다.


할머니 "사진을 왜 찍어요?"

저 "답사를 나왔습니다. 아직 이사를 안가셨네요?"

할머니 "보상금 협의가 아직 안되서 이사를 못가요"


더 물어볼것이 많았으나 갑자기 할머님이 평상위에 있는 슬레트 지붕에 고양이가 죽은거 같다고 봐달라고 하셔서 작은키로 낑낑거리며 점프해서 살펴보니 낮잠을 주무시는 길냥이 였습니다. 할머니는 고양이가 살아있는것을 확인하고는 길을따라 걸어가셨습니다.

철거되는 마을의 마지막 흔적들을 기록하며 답사를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산 귀퉁이을 깍아 지은 단독주택의 높은 담벼락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마을주민의 안전을 지켜주던 경찰 지구대 거를 위한 철제 빔들로 포위되었습니다. '떼인돈 받아드림'도 '완전책임방수'도 색을 바래며 사라지려 하고 있습니다. '데레사 식품'은 어떤 음식을 만들었을까요? 수많은 마을의 기억이 새로운 챕터를위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답사를 마무리 하고나서 얼마후에 미국의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하 세넷)교수의 『짓기와 거주하기』를 읽었습니다.책을 읽고 나서 다시 사진들을 보니 제가 답사를 하면서 궁금해왔던  재개발 후의 마을조금 선명하게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세넷'교수의 책에도시는 기능적 구조,환경(빌)과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대정신,도시정신(시테)의 결합체 입니다. 이런 결합을 위한 근,현대의 변증법적 발전이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의 심화에 따라 '빌'의 효율성에 집중하면서 비합리적일 수도 있고 효율성은 낮으나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시테'가 점적약해지면서  퇴보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정리된 도시로 구현되면서 사람들의 소통이 사라진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답사때 찍었던 사진 중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두장의 사진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첫번째 사진은 제가 답사한 재개발 구역에서 몇 블럭 밑으로 내려오면 있는 재개발이 끝난 지역입니다. 아파트 거주민 혹은 선택(?)받은 사람들만 출입하도록 '보안업체'가 성의 문지기처럼 지키고 있고, 맞은편 주택들 사이의 소소한 골목들 처럼 재개발 전에 골목이 있었을 곳은 아파트는 담벼락이라는 거대한 성벽으로 변해있습니다. 아파트와 주택이 소통,왕래가 있는지 없는지는 파악되지 않지만 두 지역의 사이에 있는 3차선 도로는 일시적 관찰자인 저에게는 엄청난 심리적 간극으로 보였습니다.  

두번째 사진은 제가 답사한 재개발 지역의 마지막 경계부분입니다. 공사를 위해 세워놓은 펜스와 붉은벽돌의 연립주택이 마주보는 모습은 재개발이 안끝났다는 점만 제외하면 첫번째 사진과 다를바 없는 모습입니다.

재개발이 완료된 모습이 첫번째 사진과 똑같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사진에 담겨진 인상은 저에게 소통되지 않는 단절을 느끼게 해줍니다.  재개발 지역을 처음 답사해본 관찰자로서 비록 철거될 예정이지만 마을의 미래가 첫번째 사진과 같은 심리적 단절이 느껴지이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거제 제2 개발 구역'의 미래가 새로 세워질 아파트 놀이터에 연립주택의 아이들이 같이 뛰어놀고 '알뜰슈퍼'와 같은 곳이 다시 생겨 여름날 저녁 맥주잔을 기울이는 마을 주민들을 제가 몇년후에 다시 답사하면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부산에 대한 저의 첫번째 기록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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