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샤워실에서 든 생각
고등학교 기숙사, 특히 유지 보수가 친절하지 않은 기숙사에서 사는 일은 상당히 독특하다. 우리 학교 기숙사의 샤워실이 특히 그렇다. 칸막이 개념이 전혀 없는 공간이라는 사실은 따로 떼어 두더라도, 각종 샤워 헤드가 정말 창의적인 방식으로 고장 나기 때문이다. 어떤 샤워기는 물이 한쪽 방향으로만 나오거나 수십 가지 방향으로 나온다. 어떤 건 호스에 구멍이 나 생각 없이 사용하면 옆사람에게 물이 튀기 때문에(칸막이가 없기 때문이다) 샤워하는 내내 손가락으로 정확하게 구멍을 막은 채로 사용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헤드가 통째로 뽑혀나간 샤워기는 자비 없는 수압을 직선으로 내뿜기도 한다. 분수처럼 사방으로 물을 뿌리는 종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샤워실이 붐비는 아침 시간에 쾌적한 샤워를 할 수 있으려면, 안경을 쓰지 않은 흐릿한 시야에서도 가장 양호한 방식으로 망가진 샤워기를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언뜻 생각하면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샤워기의 개성 있는 방식으로 호되게 당하다 보면 생존 본능에 의해 모든 위치의 샤워기 고장 유형을 잘 외울 수 있게 된다. 가끔 자리가 부족할 때면 내 샤워 스타일이 용납할 수 있는 유형의 차선책을 선택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10가지 방향의 샤워기를 선호한다.) 아침 샤워의 고인 물이 되는 것이다.
어딘가 허술한 공간에서의 일상은 비루하면서도 정이 있다. 비록 샤워기 헤드에 개성을 붙이는 하찮은 일이라도, 익숙한 점들이 늘어날수록 소속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조에서 나오는 너털웃음 같은 맛이랄까. 뭐 어때, 하며 넘길 수 있는 불편함은 오히려 그 불편함보다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어쩌면 다 함께 힘들기 때문에, 다 함께 어떻게든 덜 힘들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너무 선하기 때문에, 사람 사는 정이란 게 드는지도 모르겠다. 분주한 아침 시간에 가득 찬 샤워실을 보는 느낌과는 다르다. 나만 힘든 것과 같이 힘든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철이 많이 드는 때가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사실을 다들 느낌으로나마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학년까지만 해도 생각 없이 놀고 마냥 즐겁던 친구들, 가끔 애 같은 행동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던 아이들도 3학년이 되면서 어딘가 달라지는 모습을 본다. 대입이 눈 앞에 들이밀어지는 때부터는 그 무게와 심각성을 다들 깨닫고, 다른 학생들도 같은 처지임을 잘 알게 되기 때문일까. 함께 힘들기 때문에 성숙할 수 있고, 순간의 어려움에 쉽게 불평하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3학년의 교실은 가끔 그 구성원들의 높아지는 수준으로 인해 선생님들께 아주 약간의 의아함이나마 드려볼 수 있는 것 같다. 매번 시끄럽던 교실이 점점 잠잠해지는 모습을 보는 선생님들은 무슨 생각을 매년 해오셨을까.
기상송을 듣고서 어떻게든 샤워실에 빠르게 도착하려고 급하게 일어나 맨발로 복도를 걸어가며, 반대쪽에서 덜 떠진 눈으로 서둘러 걸어오는 몸들을 볼 때, 작지만 확실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 1학년때 들은 기상송의 제목을 함께 기억하고 있는 일, 기상 시간 무렵 때맞춰 뜨는 해를 맞아들이던 3층 복도를 기억하는 일, 폭우때 베란다로부터 밀고 들어온 빗물을 빗자루로 쓸어내던 일을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기숙사가 주었던 작고 짧은 동질감들의 집합이다.
매일 생활하는 공간은, 공간으로서의 유용함이나 기능보다는, 그 안에서 생기는 일들로 인해 의미있는 삶의 일부분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안락한 집에 있던지 낯선 나라의 길을 걷던지, 정말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와 감정이다. 좋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이라면, 좋은 공간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