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일상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정신없이 기차의 앞칸을 향해 난 긴 복도를 휘청이며 전진하고 있었다. 5호차에서 시작된 나의 짧지만 긴 여정은 11호차 3C의 빈자리에 앉아 있던 입석표 승객 대신 앉는 것으로 끝이 났다. 어떻게 요지경이 되었을까.
분명 동대구역으로 가는 4시 표를 갖고 있던 나는 출발 10분 전에 플랫폼으로 향했다. 9번 레인으로 가는 하나뿐인 계단은 일요일의 서울역을 맞아 인산인해였는데, 계단을 내려가는 데만 5분이 걸렸다.
계단에서 일어나는 정체에 관하여, 모든 사람이 동시에 한 칸씩 내려간다면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없는 것처럼 걸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정확한 박자를 알려주는 거대한 스피커가 일정한 리듬으로 빕 소리를 내어야 하겠지, 생각했다. 그리고, 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나의 정신없는 두뇌는 치밀하고도 자연스럽게, 계단에서 벗어나자마자 가장 가까운 쪽 기차로 다리를 이끌었다.
절망적인 사실을 알게 된 건, 어떤 승객이 내 옆에 앉은 사람에게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며 비켜달라고 하던 그 순간보다 아주 조금 뒤였다. 그러니까 나는 내 옆에 앉은 분의 원래 자리에 앉아 있었고, 내 옆에 앉은 분은 방금 도착하신 분의 원래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면 나는?'
나는 태연하고 침착한 표정과 마음으로 이 기차는 135편 기차이니 확인을 부탁드린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차는 235편이었다.
이 시급하고도 망해버린 상황을 겨우 인지하기 시작할 때쯤 역무원이 다가왔고, 반쯤 희석된 경상도 사투리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 135 이거는 반대편 차였는데요, 우리 차 지금 자리가 없어가 스서 가는 거 끊어야겠네'
이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쓸데없이 정겨운 그의 사투리는 얼마간의 진정 효과를 주었고, 나는 뇌가 저지른 실수를 복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자명하게도, 나는, 9번의 맞은편인, 10번 레인에 올라탔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결제할 카드를 가지고 돌아온 사이 그 사투리 역무원은 내게 빈자리를 찾아 주었다. 자리가 없었다면 동대구역까지 있는 거의 모든 역에 정차하는(그제야 통로에 가득하던 입석 승객들의 존재를 이해할 수 있었다) 기차에서 선 채로 세 시간 가까이 흔들거렸을 것이다.
나는 감사하기 짝이 없지만 황당한 마음으로 기차 6칸짜리 통로를 서 있는 승객들 사이로 비집고 나아가기 시작했고, 마침내 도착한 11호차 3C 자리에서 열심히 폰을 두드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여러 번 확인하고 검증한 이후에도 가끔씩 전혀 다른 사실이 밝혀지는 이런 일들의 이유를, 나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치매가 아니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