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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석 Dec 16. 2020

자정 무렵의 귤까기

아.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건 너무 오랜만이다. 사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인데 그건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에둘러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가 고등학교 2년 동안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책을 내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강연이나 원고 청탁이라던가 하는, 작년에 학사 일정엔 발만 걸쳐놓고 전국을 쏘다니며 재미있게 했던 일들도 아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 특히 브런치에서의 글쓰기는 내게 단순히 글 쓰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구독자 수가 늘어날수록, 보는 사람이 많으니 글을 더 잘 써야 한다는 이상한 자격지심 같은 것이 생겨 무슨 글을 써도 마음에 들지 않고 메모장 구석에 미완인 채로 남겨버리는 습관이 따라붙었다. 출간 이후 고등학교에 강연을 갈 때마다 일상 속에서 글감을 찾으라고 말한 사람은 나였는데, 그런 말을 한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거의 1년 가까이 쓴 글을 내보이지 않고 살았다는 시놉시스는 삼류 드라마에도 등장하면 욕을 먹을 법한 전개 아닌가. 물론 이번 한 해는 코로롱씨의 등장으로 내 기막힌 사연 따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장인 시간이었지만, 적어도 책까지 냈다면, 그리고 1년이나 쉬었다면(웹툰 작가가 연재를 1년 쉬었다고 생각하니 엄청나게 큰 죄를 지은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제는 좀 쓸 게 생기지 않았을까. 불과 일 년 전에는 고장 난 샤워기 같은 주제로 무려 철학을 뽑아내던 사람이 이제는 눈앞에 맛있는 귤을 두고도 쪽글 한 편 쓰지 못하다니, 너무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귤까기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최근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에서, 하루키는 자기소개서 쓰기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조언 하나를 한다. 가령 자기가 좋아하는 굴튀김에 대해 써보라는 것이다. 굴튀김은 성장 배경이나 성격, 재력과 관련된 주제가 아니지만 굴튀김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적어 가다 보면 굴튀김과 글쓴이 사이의 관계를 통해 그 사람 자체를 알 수 있는 좋은 한 편의 글이 된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굴튀김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대강 한 주제를 갖고(예를 들면 독서) 어떤 한 사람과 이야기하다 보면 굳이 다른 주제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앞으로 몇 줄을 귤에 대해 써보겠다.

귤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딸기와 함께 좋아하는 과일 투톱이기도 하다. 귤은 기본적으로 시큼하고 단 맛이 섞인, 그 중간 배합의 어느 지점에 있는 맛을 내는데, 그 맛의 배합률을 판단하는 나만의 척도는 귤껍질이 알맹이에 얼마나 단단히 붙어있나 하는 것이다. 잘 익고 단맛이 강한 귤은 껍질이 알맹이에서 거의 반쯤 분리된 상태로 손에 쥐어지기 때문에, 표면을 살짝 눌러보면 마치 베갯잇처럼 푹신하게 들어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저항이 세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한 껍질의 전반적인 모양이 울퉁불퉁하다. 이 경우 껍질을 까기도 편하거니와, 까는 과정에서 차마 분리되지 않은 섬유질 덩어리들이 투둑 소리를 내며 부드럽게 뜯어지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 느낌이 온다. 먹어보지 않아도 단 귤이다. 신맛이 강하거나 상대적으로 작은 귤은 그 반대 지점에 있다. 쥐었을 때 빈틈이 없이 단단하고 둥글며, 적절한 힘을 주지 않으면 쉽게 껍질이 조각나 온전한 귤까기를 시전 하기가 어렵다. 맛도 역시 까다롭다. 개인적으로 최상품으로 치는 것은 귤의 꼭지 부분부터 깔 수 있는 경우인데, 보통 귤까기의 입문자라면 쉽사리 시도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만약 꼭지 부분에 검지를 갖다 대었을 때 상술한 베갯잇의 촉감이 느껴진다면 적절한 세기로 꼭지의 뿌리부터 통째로 뜯어낼 수 있다. 꼭지에 달려있는 큰 흰색 섬유질 덩어리는 귤의 급소이자 명당이다. 이곳을 첫 번째 손짓으로 까버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좋은 귤이자 상당한 귤까기 능력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귤의 상태와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힘으로 귤을 까는 것이다. 급하게 힘을 준다면 알맹이가 터져 아주 지저분한 모습을 볼 것이고, 지나치게 약한 힘이라면 껍질이 조각나기 십상이다. 때로는 까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지긋이 당겨주는 편이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영화 <카>에 등장하는 닥 허드슨의 말처럼, 때로는 오른쪽으로 가기 위해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오랜만에 이런 좋은 귤을 찾았기 때문이다. 새벽에 배가 출출해 주방에 쌓여있는 귤 상자에서 몇 개를 꺼냈는데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감촉이 느껴져, 설레는 마음으로 귤을 까먹으며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마음속으로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렇게나마 짧은 글을 쓰는 것은 다시 글을 쉽게 쓰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다. 최근 구독자가 900명을 넘었다는 브런치 알림이 왔는데, 1년 넘게 아무 글도 쓰지 않고 있던 상태에서 이런 알림을 받는 것이 퍽이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행동은 그렇지 못했어도, 글을 잘 쓰려면 결국 많이 써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앞으로 쓸 글들은 학교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고, 주장도, 철학도 아니다.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구독자 13명인 계정에 아무에게나 던질법한 말들을 욱여넣던 그때처럼 쓰려고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대하여 나는 쓸 것이다. 물론, 고작 귤 하나를 까며 매거진 코너 하나를 새로 파는 일이 좀 터무니없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애초에 나는 좀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그냥 그렇다고 생각한다.

(900명 구독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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