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으로 불리고 싶나
필명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 있다. 브런치에 개인적 경험이 담긴 글을 발행하려다 보니 조금은 숨고 싶은 마음이 있던 것이다. 지인이 감상을 말해줄 때면 두 손이 오그라들 만큼 부끄러웠다. 누군가 봐주길 바라며 올린 글인데도, 참 이상하게... 그래서 무엇보다 필명이 갖고 싶었다. 글도 쓰고 소통도 하고 싶으면서, 약간은 나를 숨기고 싶은 그런 복합적인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필명을 지어내기엔 자신감도 창의력도 없었다. 당당하게 '나를 뫄뫄라고 불러줘.'라고 하기엔 불리고 싶은 것이 도무지 없었고, 기깔나는 이름을 뽑아내고 싶지만 떠오르는 것도 없었다. 이것저것을 떠올리고 바꿔대다가 결국은 본명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썼던 글을 정리한 뒤 다시 채워가면서는 이름을 살짝 비틀어 사용했다.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이상의 것이 없었기에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필명이라는 새로운 옷을 찾는 일에도 시들해져 갔다. 어떤 옷도 내 것 같지 않았고, 누가 나를 무엇으로 부르든 무슨 상관이겠냐는 해탈에 가까운 마음이 들었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면 알겠지만, 댓글이 달리는 일이 생각보다 드물다. 누군가 이름을 부르며 소통할 일이 없어 더더욱 이름의 중요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친구의 권유로 사주를 보러 가게 되었다. 친구는 직접 예약하는 호의까지 보여주면서 나를 용하다는 사주집으로 이끌었다. 딱히 궁금한 건 없었지만 마음 써주는 친구가 고마워 장단을 맞췄다. 사주야 간혹 재미로 보는 것 일뿐, 고개를 끄덕이고 듣고 나와 잊어버리기 일쑤였기에 큰 기대를 하진 않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괜찮았다. 부서 사람들이 모두 보러 갔을 정도로 잘 맞았다며 호언장담을 하던 친구의 말대로 꽤 많은 것을 맞췄으며, 어쩌면 내게 필요하던 말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뭐 성향이 어떻고, 관운이 어떻고, 연애운이 어떻고 등의 이야기가 지나고 난 뒤, 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필명을 권유받았다. 이름이 다소 평범하기 때문에 개성 강한 이름을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이 뒤따랐다. 목(木)의 기운을 받을 수 있게 꽃이나 나무의 이름 중에서 선택하는 것도 괜찮다며 나중에 작명소를 가보거나 창의력을 발휘해보라는 말을 얹어줬다.
작가로서의 삶이 잘 풀릴까 싶어 필명을 고민해본 적은 없다... 글쎄, 이성적으로 따져보면 그 둘의 상관관계는 증명된 게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또 저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린다. 평소에 꽃과 나무를 좋아하던 탓일까. 그 아름다운 것들이 내 이름이 된다는 것은 반갑고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 필명을 쓰진 않겠지만 무엇으로 불리고 싶은지 자꾸만 고민하게 되는 시간을 살고 있다. 밤에 하는 무의미한 생각이 늘어 조금은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