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도 가까운
나는 엄마와 취향이 안 맞는다. 사춘기 때는 줄곧 '옷'을 놓고 티격 거렸다. 엄마는 내가 입고 다니는 옷이 마음에 차지 않았고, 나는 내 패션을 가지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가 싫었다. 취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사다 주는 옷도 싫었다. 예쁘고 예쁘지 않고를 떠나서, 어린 맘에는 '엄마가 골랐다'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엄마는 한 번이라도 입으라고 했고 나는 굳이 한번 입을 옷을 왜 사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예쁜 옷을 보면 딸을 떠올리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에게 취향을 공유하는 상황은 내게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엄마에게는 나의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납득시켜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느꼈다. 고작 옷을 두고도 티격태격 싸우던 우리였으니까. 나는 옹졸했고 미성숙해서 엄마의 호기심을 모른척했다. 엄마는 나의 취향을 알지 못했고 나 역시 엄마의 취향을 묻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기 위해 서로의 취향에 무관심해지기를 선택했다.
어느 날, 무료해 보이는 엄마에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한 권 건넨 적 있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라는 책이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었는데 뭉클한 감동이 있었다. 엄마한테 책을 권한 건 반쯤은 충동적인 행동이었다. 며칠 후, 엄마는 다 읽었다는 말과 함께 책을 돌려줬다. 거기까지는 책을 빌려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엄마는 두 번째 단편이 제일 좋더라는, 기대치 않았던 짧은 감상을 덧붙여줬다. 나는 내심 깜짝 놀랐는데, 왜냐하면 나 역시도 두 번째를 제일 울컥하는 심정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종종 엄마에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권했다. 엄마는 내가 권한 콘텐츠를 꽤 성실하게 보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가끔 길게는 아니어도 짧은 감상을 나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엄마도 맘에 들어하는 것은 알게 되면 꽤나 짜릿했다. 친구가 나의 추천을 마음에 들어하는 것과는 결이 다른 짜릿함이었다. 엄마의 취향을 내게서 발견하는 것에는 묘한 감동이 뒤따른다. 멀게 느껴지던 사람을 내 안으로 소환시킨다. 나의 어디메쯤에 흐르고 있는 사람...
하루는 차를 타고 가던 중, 라디오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Tempest 3악장이 흘러나왔다. 평소 좋아하는 노래이다. 그냥 마음이 가서 한 번씩 찾게 되는 그런 노래.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는 찰나에 엄마가 'Tempest네. 내가 좋아하는 노랜데...'라며 반가움을 내비쳤다. 심지어 오빠도 Tempest를 좋아한단다. 신기한 우연이다. 그 이후로 Tempest를 들을 때는 이유 없이 엄마를 떠올린다.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가 엄마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