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야 Oct 12. 2019

내 양팔엔 흑염룡이 날뛰고 있어

아홉 번째, 상사 이야기

‘내 왼팔엔 흑염룡이 날뛰고 있어···.’라는 말이 있는데, 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치고 있는 사춘기 아이들이 자신의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를 때 말할 법하다. 모든 중2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냥 흔히 말하는 중2병에 걸렸을 때 나올 것 같은 말이란 건데. 이런 말을 할 법한 사람을 회사에서, 그것도 상사로 만난다면 어떨까. 불행히도 나는 이런 상사를 회사에서 만났다.

     



과장 H는 지난 이야기에 나온 과장 G와 같은 회사에서 만난 상사였다. 그는 회사에서 원래 다른 분야의 다자인 일을 하고 있었는데, 과장 G가 돌연 퇴사하면서 그의 업무를 넘겨받아 함께 일하게 되었다. 과장 H는 일을 넘겨받으며 아주 자신만만해했다.     


본인이 일을 맡으면 앞으로 야근은 없을 거라 말하면서 과장 G는 정말 일을 못하는 사람이며, 그가 왜 일을 못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술자리에서 직원들에게 얘기해주었다.     


실제로 초반에 과장 H의 업무 처리는 과장 G보다 나아 보였다. 그는 일단 업무 스케줄을 모두 정리했으며, 스케줄에 맞추어 직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정말로 야근할 일 없을 것 같다는 같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그건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과장 H 스스로가 그렇게 자부했던 본인의 일솜씨는 일 스케줄이 조금만 엇나가자 마치 바닷가에 만든 모래성처럼 우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과장 G가 일할 때처럼 제때 갔던 상품이 불량으로 인해 A/S가 들어오게 되고, 그간 공장과의 불화로 스케줄에 문제가 생기자 과장 H는 종종 사장실에 불려 들어가 한소리 듣곤 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과장 H의 실상이 드러났다. 




과장 H는 사장실에서 한 소리 듣고 나오면 사무실로 돌아와 잔뜩 스트레스받으며 사장 욕을 했다. 그리곤 그 스트레스를 꼭 외부로 표출했다. 스트레스를 표출할 때 그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그는 마치 양팔에 봉인된 ‘흑염룡’이 나오려는 사람처럼 책상에 팔꿈치를 걸치고 두 손은 양쪽 관자놀이를 짚으며 고개를 떨구고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게 한동안 있다가 잠잠하다 싶으면 본인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씩 바닥으로 밀어 떨어트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직원들은 도대체 저 사람 지금 제정신인가 하는 말을 했으나 과장 H의 행동은 더욱 히스테릭해졌다.     


언젠가 또 사장에게 한소리 듣고 내려왔을 때, 새로 들어온 직원이 업무 관련해서 과장 H에게 질문을 하자 그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좀 알아서 해요.’라고 신경질 내더니 직원이 정말로 알아서 하자 ‘왜 그렇게 했어요?’라며 또 신경질 냈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그의 행동들로 인해 사무실 분위기는 더욱 경직되었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말로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일하는 감정적인 사람이었다. 결국 그런 성격은 업무에도 지장을 주었는데, 어느 날 전화로 A/S 건 보낸 지 꽤 된 것 같은데 언제 오느냐는 고객의 문의 전화를 받았다. 내 기억으로 그 건은 분명 일주일 전에 수정해서 공장으로 전달 요청해 두었는데 아직 고객이 받지 못한 것이 확실히 이상했다.

그래서 A/S 건을 공장으로 전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과장 H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으나 과장 H는 ‘몰라요.’하고 낭창하게 대답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지체할 수 없어서 직접 찾아 나섰다. 그리고 정말 황당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분명 공장에 전달해 달라고 했던 A/S 건이 아직도 버젓이 사무실 한쪽 귀퉁이에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한 개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이를 발견한 내가 과장 H에게 왜 상품이 아직도 여기에 있는 것이냐고 묻자 과장 H는 또 낭창한 목소리로 ‘몰라요. 안 가져가던데요?’라고 대답했다. 어이가 없었다.

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과장 H는 이렇게 덧붙여 말했다. ‘공장에서 A/S 할 시간 없다면서 안 가져가던데요?’라고 했다. 그걸 어떻게든 가져가게 하는 역할이 본인의 역할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나와 동료 직원은 일단 급한 A/S건을 공장으로 직접 가지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공장에서는 A/S가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번거로워서 지금 할 수 없다고 했고, 나와 동료 직원은 공장 사장님께 사정해서 A/S건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동료직원은 쌍욕을 하며 과장 H를 욕했다. 그리고는 과장 G보다 더 하다며, 그래도 과장 G는 해결하려고 뛰어다니기라도 했지 과장 H는 그것도 없다며 화냈다.     


그 와중에 이 일을 알게 된 사장이 앞으로 들어오는 A/S건은 A/S로 맡기지 말고 그냥 새 상품으로 처리해 맡기라 했고 과장 H는 이 말을 직원들에게 전달하며 마치 자신이 해결책을 찾은 것처럼 우쭐거렸다. 꼴 보기 싫었다.     




결국 이런 상태의 회사에 시달렸던 직원 중 몇몇이 시즌이 끝난 후 퇴사를 했고, 나 역시 더는 그곳에 남아 일하고 싶지 않아 퇴사했다.     


사실 어느 회사를 가도 내게 100% 맞는 회사는 없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꼭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직장인이라면 모두들 어느 정도 그 점을 감내하며 다니고 있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만큼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싶었다. 때론 ‘피할 수 있다면 피해라.’가 맞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업무 중 자꾸 흑염룡을 소환하려던 과장 H의 모습. 대체 왜 그러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삼십육계 줄행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