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야 Aug 20. 2019

어떻게 내리는 거야?

첫 번째, 화장실 이야기

나는 꽤 섬세한 장을 갖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오래전부터 민감한 장 때문에 곤욕스러운 에피소드를 생성하곤 했다. 그중 얘기할 첫 번째 에피소드는 첫 유럽여행을 갔을 때,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함께 여행 간 친구 쥬쥬와 파리를 벗어나 베르사유 궁전을 방문하기로 한 날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은 아주 넓어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하루를 온전히 투자해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에 나와 쥬쥬는 아침 식사를 마치자마자 길을 나섰다. 그때쯤엔 제법 길이 익숙해져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일은 아주 쉬웠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말을 취소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데, 바로 배에서 '나 이제 나가겠노라.' 하고 신호가 오고야 만 것이다. 며칠 동안 파리 여행을 하며 파리 길거리에서 화장실을 사용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터득한 상태였기에, 나는 금방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예상대로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으며 여유롭게 일과를 시작하는 파리의 상점은 모두 굳게 문이 닫혀 있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참으며 걷고 있는데, 마침 눈앞에 빨간 'KFC' 간판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겁지겁 걸어가니 심지어 문도 열려 있었다. 기쁜 마음에 얼른 가게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 표시가 보이는 2층으로 곧장 올라갔을 때, 'No!'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을 오르던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린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가게 주인인 듯한 남자가 카운터에서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직 오픈 상태가 아니라든가, 파리에선 아침에 화장실 손님을 받지 않는다든가 하는 규칙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너무 급했다.


나는 나를 주시하는 그를 향해 '아이 해브 어 머니'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화장실 값을 낼 돈이 있으니 제발 쓰게 해 주세요.'라는 나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No'를 외쳤고, 괜히 타지에서 험한 일 당할까 봐 두려워진 나는 점점 싸해지는 배를 부여잡고 가게를 나와야 했다.


배에선 '꾸룩꾸룩', 땀은 '삐질삐질'. 이쯤 되니 머릿속엔 호화로운 베르사유 궁전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화장실' 세 글자만 가득 찼다. 




결국 몇 걸음 못 가 다시 숙소로 되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쯤, 화장실 표시가 붙은 까만 컨테이너 건물이 보였다. 달려가 보니 공중화장실이었다. 마치 기차나 비행기에 안에 있는 화장실처럼 한 명씩 안에 들어가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었는데, 나는 얼른 들어가 변기에 앉았다. 비워지는 만큼 '마음의 평화'가 밀려왔다.


그제야 여유가 생긴 나는 화장실 안을 두리번거렸다. 다른 듯 닮은 익숙한 화장실 모습이었다. 그러다 '시간제한이 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볼일을 다 본 참이라 뒤처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변기 위 벽에 있는 버튼을 눌렀는데, 문제는 그때 발생했다.


분명히 변기 위에 있으니 이 버튼이 맞는데,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당황했지만 옆에 또 다른 버튼이 하나 있기에 그 버튼을 눌렀지만 Fail. '고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당황했다. 공중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물도 안 내리고 도망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나 다음 차례 사람이 내가 저질러 놓은 일을 본다면 얼마나 욕할까. 그때부터 나는 화장실 안에 있는 누를 수 있는 모든 걸 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두 처참히 실패했고 변기 안, 내가 저질러 놓은 것은 여전했다.


도저히 혼자서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아 결국 화장실 문을 열고 쥬쥬를 불렀다. 앞에 서 있는 쥬쥬 뒤로 다음 차례 사람이 언뜻 보여서 나는 얼른 쥬쥬를 화장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변기 뚜껑이 없었기에 난 악착같이 몸으로 변기를 가리며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내 말에 쥬쥬도 당황하며 화장실 안에 있는 여러 버튼을 눌렀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둘이서 우왕좌왕하는 중에 근처를 지나던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손짓을 해 가며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화장실 밖으로 나오라 했고, 나는 행여 변기 안이 보일까 봐 가장 늦게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어쩐지 찜찜한 마음을 갖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문이 닫혔고, 아저씨는 검지로 본인의 귀와 화장실을 번갈아 가리키며 들어 보라 했다. 대체 뭘 들어 보라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안고 몇 초간 기다리자 곧 '쏴아아' 하고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이 화장실은 자동이라 사람이 밖으로 나오고 문이 닫히면 알아서 물이 내려간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걸 모르고 화장실 안에서 별짓을 다 하며 우왕좌왕했던 것을 생각하니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 낯선 곳에 오니 화장실 물 내리는 것까지 실수 연발이라니. 두고두고 회자될 에피소드 하나 얻었다는 생각을 하며 가벼워진 몸과 함께 다시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했다. 

    

··· 끝인 줄 알았지?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다.


'쏴아아'하고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들릴 때 그 민망함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