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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야 Aug 22. 2019

파리 사람들은 모두 장이 튼튼해?

두 번째, 화장실 이야기

공중화장실 사건 이후 모든 것이 평온할 줄 알았지만, 역시 민감한 내 장이 변덕을 부리지 않을 리 없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버스로 환승하기 위해 어느 역에 도착했을 때, 또다시 뱃속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또 나가도 되나요?’ 세상에 맙소사.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쥬쥬에게 또 화장실을 가야겠다고 보고했다. 그 말에 쥬쥬는 조금 당황스러워 보였지만, 어쨌든 버스에서 일을 치를 수 없기에 또다시 화장실 찾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래도 그땐 조금 안심하긴 했다. 어쨌든 지하철역이니까.




나와 쥬쥬는 지하철 플랫폼을 나와 마침 보이는 안내데스크를 찾아갔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주워들은 ‘엑스퀴제 무아’로 안내원을 불렀다. 곧 안내원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아주 간절하게 ‘투왈렛’이라 말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놀라웠는데, 지하철역에 고객용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나에게 지하철역은 화장실 쓰기 편한 곳이었다. 길을 걷다 화장실이 급할 때 지하철역이 보이면 얼른 뛰어들어갔고,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가도 급하면 바로 내려서 화장실로 갔다. 지하철역이라면 응당 화장실이 있었는데, 심지어 앞서 여행했던 네덜란드와 독일에서도 지하철역 화장실을 유용하게 사용했기에 지하철역 안에 화장실이 없다는 안내원의 말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거듭 안내원에게 정말 화장실이 없냐고 물었고, 안내원은 단호했다. 그렇담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하며 쥬쥬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안내원이 위로 올라가 맥도날드를 가라고 했다. 다행이다. 위로 올라가면 맥도날드가 있구나. 나와 쥬쥬는 안내원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믿음은 금세 토막 나고 말았다.


지하철역을 나오자 보이는 것은 버스 정류장과 커다란 도로, 몇몇 상점과 일반 가정집 정도가 전부였다. 그 새빨간 간판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는데, 맥도날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일말의 믿음이 남아 있었기에 도로 이편저편을 건너며 안내원이 말한 맥도날드를 찾으려 애썼지만, 결국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다른 가게가 있나 살펴보았다. 그러나 하필 그곳이 주택가인지 상점은 별로 보이지 않았고 겨우 발견한 고급스러운 식당은 영업을 하는지 하지 않는지 알 수 없어서 들어가지 못했다.


그 사이 뱃속에서는 빨리 내보내 달라 아우성이었고 나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주위를 탐지하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건너편에 문 열린 마트 하나가 보였다.




마트의 규모가 한국의 대형마트 정도로 커서 이 정도면 화장실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한달음에 들어가 가장 먼저 마주친 점원에게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었다. 하지만 점원은 마치 지하철역 안내원과 돌림노래라도 부르는 듯 고객용 화장실은 없다는 같은 말을 했다. 이렇게 큰 마트에 화장실이 없다니, 나는 좌절했지만 내 뱃속은 얼른 내보내 달라 더 활개 쳤다.


결국 난처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는데 점원이 희망찬 말을 했다. 직원용 화장실을 안내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는 ‘환희의 송가’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연신 땡큐를 날리며 점원이 얼른 나를 화장실로 데려다주길 기다렸고, 점원은 옆에 있던 동료 점원에게 무어라 말을 한 뒤 나와 쥬쥬에게 자신을 따라오라 했다.


행여 놓칠세라 잰걸음으로 점원을 따라 한쪽 구석에 있는 계단을 빙글빙글 내려갔다. 체감 상 지하 3층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무슨 화장실을 이렇게 꽁꽁 숨겨 놓은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2칸짜리 작은 직원 화장실에 도착했다. 점원은 나에게 화장실을 쓰라고 말하곤 본인도 나머지 한 칸으로 들어갔다.


변기에 앉자 그제야 ‘휴’하고 숨을 내쉬었고 또다시 밀려오는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볼일을 마친 셋은 다시 계단을 올랐고 연신 땡큐를 남발하는 나에게 점원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인사를 남기곤 본인의 자리로 돌아갔다.


머나먼 타지에서 마트 직원 화장실을 사용하는 신기한 경험을 한 뒤에야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다행히 이미 두 번 난리 친 덕인지 화장실 찾기 어려운 것으로 악명 높은 베르사유 궁전을 구경하는 동안에는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도 화장실이 없고 마트에도 화장실이 없으면 길가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거지? 파리 사람들은 이미 다 적응해서 장이 튼튼한 건가?’ 이 날도 그리고 아직까지도, 내 궁금증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지하로 한참 빙글빙글 내려가야 만날 수 있던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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