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일기 #02
그 아이 이름은 ‘록이’였어. 초록 눈을 가져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거겠지. 예쁜 이름이야. 고양이가 가질 수 있는 온갖 색이 고루 섞인 멋진 코트를 입고 있지. 카오스중에서도 이렇게 예쁘기는 쉽지 않을 거야.
나와 고양이 별의 거리를 한 껏 벌려 놓은 록이를 만난 지도 한 달이 훌쩍 넘었네 그동안 꽤나 친해질 수 있었어. 촌스럽게 먼저 다가서지 않고, 마음은 몇 번이고 먼저 다가가 내 존재를 알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무심한 듯 그녀의 옆을 스쳐 지나가기를 몇 번 하니 처음엔 새초롬을 떨던 록이가 먼저 말을 걸더군. 아빠에게 배운 작업의 정석이 작동을 하더라고!
“오빤 어디 살아요? 이 동네에서 처음 봤는데...”
귀여운 록이가 내게 오빠라고 불러 주었어! 아, 콩닥콩닥 뛰는 가슴과 달리 말은 얼마나 심드렁하게 나오는지.
“어, 난 심학산 언덕에 살아. 이 마을 바로 위에. 여기저기 다니니까.. “
그쯤하고 그 날은 그냥 지나쳤어. 마음이야 눌러앉아 수다 떨고 싶었지만... 암튼 나의 밀당 작전이 주효했던지 다음부터 록이는 지나가는 내게 일부러 아는 체를 하더군.
이제는 하루에도 두어 번 씩 아지트 밥자리에서도 만나고 주차장에서도 부딪치다 보니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 많은 대화를 나눴거든.
좋은 소식은 록이가 나를 편한 말상대로 여긴다는 점이고 나쁜, 나쁘다기보다 슬픈 소식은 록이에게 남자 친구가 있다는 거지. 입이며 가슴에 하얀 털이 섞여 치즈도 아닌 것이 친절한 치즈냥 인척 잔뜩 하는 못생긴 뚱냥이 녀석이야.
뭐 그렇다고 내가 질투에 몸부림치는 것은 아니야. 록이와 내가 수다 떨 때마다 맥락 없이 끼어드는 눈치 없는 녀석이지만, 그래도 험난한 길 생활에 한결같이 록이 곁에 있어주니 고맙지. 그래도 뚱냥이가 함께 있어서 록이가 동네 덩치 큰 고양이가 해코지 하지 않을까, 들개들을 만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괴롭히는 건달 고양이나 들개를 만나면 뚱이 녀석이 대신 맞는 한이 있어도 록이 도망갈 시간은 벌어 줄 수 있을 게야.
계절이 바뀌는 어느 한적한 오후에 록이가 혼자서 아지트 데크에 어슬렁 거리며 나타나 내 옆에 슬며시 앉더군. 평소 록이와는 다른 모습이었어. 오자마자 수다를 떨거나, 밥을 먹어야 할 텐데.. 그저 옆에서 먼 하늘을 바라보다 또 내 눈치를 보다가 그러더라고. 나를 불편해하나 싶어, 슬그머니 일어서려는데 돌연 말을 걸었어.
“오빠, 나 아이를 가졌어요. 이제 곧 나아야 하는데 어디에서 나아야 할지 고민이야. 여기 아지트는 너무 고양이들이 많이 다녀서... 안 좋겠죠?”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는 한마디에 심장이 멎는 듯했지. 혹시나... 아냐,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그래? 그럼 같이 한 번 알아보자..”
평소 나답게 심드렁하게 대답하고서는 이내 아지트를 떠났어. 나의 기대와 걱정이 뒤범벅된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록이를 뒤로 하고 집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다짐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록이는 내가 지킨다고. 록이와 그 아이들이 행복해지도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고... 갑자기 비가 내리더군. 변덕스런 날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