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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Sep 26. 2020

다시, 시월이 온다.

9 마지막 . 하늘은 맑고 바람은 시원하고  감나무는 익어가고.. 데크에서 멍 때리고 있자니 문득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났다.
2  동안 마음을 바쳤던 판교 스캠 사업은 종료가 되고 갑자기 실직자 모드가 됐다. 다시 살려보려고 애썼지만 역부족이었고, 허탈감과 상실감이 봄부터 계속됐다. 직장을 잃는다는 두려움보다는 열심히 했던 노력에 대해 인정받지 못했다는 서운함이 컸던 것 같다. 

그래, 이쯤 했으면 남편  먹어도 되겠다 싶어 은퇴를 할까.. 아니면 특기를 살려 창업이나 다시 해볼까 생각했다. 그런데 딱히 열렬하게 창업의 의지가 불타오르는 것도 아니어서 어정쩡하게 흐느적거렸다. 

행운은 10월부터 시작됐다.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무실도 파격적인 조건으로 얻게 되고 프로젝트 제안도 하게 되고 무엇보다 스캠에서 손발을 맞춘 동료들로 팀도 만들어졌다.


지난 일 년은, 믿기지 않은 행운이 계속됐다. 걱정하는 일들이, 때로 시간은 필요했지만, 마법처럼 풀려 나갔다.


인천 스타트업 파크 사업이 시작되고 우리 팀이 신한금융의 파트너가 되어 운영을 맡게 되었을 때, 과연 팀이 모이겠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인천은 오히려 서울과 너무 가까워 서울로 가려할 것이라는 부정하기 힘든 지적들을 수없이 받았다.


물론 나도 걱정이 컸다. 9월, 정작 모집이 시작되고 심사를 하면서 너무 좋은 팀이 많아 떨어뜨려야 하는 것을 걱정하게 됐다. 이런 추세라면 애초 꿈꾸었던 글로벌 확장의 전초기지도 가능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필요한 순간마다 사람들이 도와줬다. 사무실을 내어주거나,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거나, 협력에 응해주고 내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사실 나는 언제나 노력한 것에 비해 성과가 적다는 생각을 많이 하며 살았다. 그런데 지난 1년 간은, 난 그저 묻어갈 뿐 모든 것이 주변 사람들 도움이라 느끼며 살고 있다. 평생 저금한 인복을 복리로 이자 붙여서 돌려받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저절로 참 고맙다는 마음의 소리를 되뇌고 있다.


다시 시월이다. 이제부턴 내가 사람들을 도와주며 행운을 나눠 주는 사람이 되었으면...


감나무는 익어가고 하늘은 청명하고 더없이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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