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스타트업 캠퍼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자 할 일이 없어졌다. 말하자면 ‘백수’가 된 것이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무엇을 해야 할까... 그 어느 때보다도 선택지가 많았고 그만큼 고르기도 힘들었다.
다른 회사에 취업도 생각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내 길이 아니다 싶었다. 다시 회사를 만들어 볼까도 생각했다. 무엇을 할까. 취미 삼아했던 가방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해볼까도 아주 잠깐 고민했다.
주변에서는 마침 시골에서 전원생활도 시작했겠다. 사회활동은 접고 은퇴한 것은 아닌지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잘 안다. 뭔가 움직이지 않으면 찬란한 전원생활이 무척 심심한 흑백으로 바뀌고 말 것이었다.
길지 않은 백수 기간 동안 짧지 않은 내 삶의 궤적을 돌아봤다. 그동안 내가 했던 일, 다른 이에 비해 유독 ‘중대한 결심’을 많이 하며 많은 것을 저지르며 살아왔다. 언제 내가 즐거웠고, 무엇을 잘했는지.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밥을 하면서도, 텃밭에 물 주면서도, 마당에 앉아 넋 놓고 바람을 느끼면서도 계속 머릿속으로는 답을 얻기 위한 연산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는 선택해야 한다. 가방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만, 업으로 지속할 것은 아니며, 이제는 정말로 오래 할 일, 하면서 소진되는 일이 아니라 일을 할수록 배우고 채워지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결론은 2007년 내가 창업했던 회사, 미디어유를 재건축하는 것이었다. 재건축 아파트는 인기라는 것을 알지만 재건축 회사라니... 왜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생소하다. 미디어유는 2007년, PR2.0의 관점에서 기업을 위한 소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는 회사였다. 지금은 기업이나 조직이 소셜 미디어를 고객과의 소통에 활용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말 생소한 개념이었다. 기업을 위해 처음부터 기초를 닦았고 나름 성공사례도 만들었고, 실패한 적도 있었다. 초기에는 메타블로그 서비스인 ‘블로그코리아’를 운영하기도 했다.
소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기초를 닦았고 시장을 열었지만 회사 자체로는 부침이 있었고, 나 또한 그 과정에서 흔들렸다. 바람 잘 날 없는 소셜 공간처럼 회사도 그랬다. 언제나 새로운 문제가 떠올랐고 직원들은 들고 나고 했다. 14년 조직 내 소요가 있고 나서는 나 스스로가 기력이 빠져서 다른 일에 눈을 돌렸던 곳이다. 그렇게 폐업하지 않은 채로 뼈대만 남아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미디어유를 지나쳐간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했고 꽤 성과를 거두었다는 사실.
회사를 만드는 일이 어느 때보다도 쉬운 세상이 됐다. 1996년, 내가 처음으로 창업을 할 때에 비하면 말할 수 없이 쉽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다른 회사를 만들면 그뿐일 텐데... 나는 굳이 먼지 쌓인 미디어유의 뼈대마저 허물고 그 기반에 다시 쌓아 올리기로 결심했다. 이제 내 인생에서 무언가를 더 만들고 펼쳐나갈 때가 아니라, 있는 것을 정리 정돈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가장 컸다. 그리고 2019년에 다시 하려는 일이, 2007년 미디어유가 이제까지 없었던 시장을 개척했던 것처럼, 생소하고, 과연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새로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난 12년간의 미디어유의 여정에서 ‘처음’을 형성했던 “멘땅에 헤딩” 정신을 이어받고 싶었다.
이제, 재건축 회사 (주)미디어유를 다시 시작한다. 설렌다. 걱정도 된다. 그래도 괜찮다. 내가 갈 수 있는 만큼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