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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Aug 08. 2019

스타트업과 함께 한 2년

휴가를 마치고 출근을 해보니 사무실이 텅 비었다. 같은 사무실을 사용했던 입주팀 와이즐리가 서울로 이사를 간 것이다. 1년 반 전, 세 명이 입주했던 와이즐리는 23명으로 직원이 늘었다. 팀당 최대인원 6명 정도로 예상했던 센터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인원이 늘었다. 하는 수 없이 센터 운영팀이 있는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며 인원이 늘면 조금 불편하게 지내자고 결정했던 것이 불과 지난해 말이었다. 함께 있을 때는 인구밀도가 높아서 아무래도 좀 불편하다 생각했는데 막상 이사를 나가니 마음이 허전하다. 그래도 놀랍게 성장해서, 더 큰 도약을 기약하며 졸업을 한 것이니 뿌듯함도 남아있다. 


 '품질 좋은 면도기를 온라인으로 싼 값에' 판매한다는 전략은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었고 시도한 업체들도 여럿 되었지만 와이즐리만큼 성공한 사례는 없었다. SNS를 통해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고 소비자들의 추천으로 성장했다. 전형적으로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이 주효했다. 


김동욱 대표를 보면 준비된 창업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처음 입주팀 선발을 위해 와이즐리 사업 아이템을 발표하던 때부터 안정적이고 자신감에 차있었다. 자신만만한 CEO는 어딘지 들떠 있는 듯해서 불안한 인상을 주고 안정적인 CEO는 어쩐지 크게 성장하지는 못할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데, 그는 보기 드물게 차분하면서도 자신만만했다. 그것은 비단 그의 태도뿐 아니었다. 와이즐리가 내리는 결정 하나하나가 노련한 경영자처럼 수 십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유통채널을 D2C로 유지하겠다는 결정, 조금 속도가 느리더라도 조직과 합이 맞는 사람만 채용한다는 전략, 올 가을 와이즐리 2.0을 선언하며 더 좋은 디자인에, 품질이 업그레이드된 면도날을 장착한 신제품을 내면서도 가격은 올리지 않겠다는 결정 등이 곧잘 작은 성과에 도취되곤 하는 '스타트업' 경영자의 모습과는 달랐다. (모든 스타트업 경영자가 작은 성과에 도취된다는 것은 아니니...)


사실, 와이즐리뿐 아니었다. 센터에는 유달리 빠르게 성장하고 놀라운 성과를 내는 팀들이 많았다. 


화장품 용기를 친환경 소재인 탄성 실리콘으로 바꿔 잔량을 남기지 않고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제품으로 전 세계 화장품 브랜드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너보틀도 센터 입주팀이다. 이너보틀은 지난해 K 스타트업 2018에서 대통령상을 받아 우리 센터의 이름을 빛내주기도 했다. 


얼마 전 시리즈 A 투자를 받고 새롭게 사무실을 찾아 이전한 마켓보로도 척박한 식자재 유통 시장을 스마트한 영역으로 바꾸고 있는 인간승리의 스타트업이다. 상대적으로 기술 확산 속도가 더딘 시장에서 맨땅에 헤딩하며 일궈낸 성과이다.


드러나는 성과를 낸 기업뿐 아니라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노력하는 팀들이 너무 많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처음 센터 문을 열었을 때 경기도 담당 주무관과 (우리 센터는 경기도 지원사업의 하나로 운영되는 곳이다) 운영 목표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경기도 주무관은 그래도 보육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9년까지 누적 매출 100억 원은 달성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웃었다. 2017년 말 당시 예비 창업자와 창업 1년 이내 기업 20팀이 입주해 있었고 매출이 나는 팀은 한 팀정도 밖에 없었다. 극초기 기업을 보육하는 센터에서 거의 이루기 힘든 목표처럼 보였다. 그렇게 정해진 매출 목표가 2019년 9월까지 입주팀 누적 매출 100억 원을 달성이었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84개 팀을 보육해서 누적 매출 160억 원 정도를 기록했다. 다시 생각해도 뿌듯한 수치다. 난 숫자에 목숨 걸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래도 숫자가 주는 확고함이 있다.


어쨌든 센터는 잘 운영되었다. 팀들도 크게 성장했고 팀들 간의 유대감도 상당했다. 문제는 이 센터가 8월 말로 문을 닫는다는데 있다. 뭔가를 잘하면 좀 더 격려해주고 더 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나의 가녀린 생각이 결정을 뒤집지는 못했다.


오늘 텅 빈 사무실을 바라보니 이제 사업이 끝나간다는 사실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입주팀을 통해 나 또한 많이 배웠다. 나 또한 창업을 해서 동력을 잃고 지쳐 있을 때, 창업팀을 통해 용기를 얻고 힘을 냈다. 그들의 성장을 통해 뿌듯함도 느꼈다. 다만, 이 유대감을 잘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길이 무엇일까를 고민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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