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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길냥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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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선 Sep 27. 2020

비상사태

길냥일기 #04

“크 큰 일 났다. 다들 모여 대책을 마련해야 해!”


록이와 뚱이를 마을 주차장 위쪽 풀 숲으로 불러 모았어. 오늘 아지트 데크에서 아침을 먹다가 아줌마와 아저씨가 하는 얘기를 들었거든. 아지트 단골인 우리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야. 이걸 어쩐다.


록이는 수유로 지친 몸을 이끌고 와 주었고 뚱이도 다급한 내 소리에 놀랐던지 이내 풀 숲으로 왔더군.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의 설명을 기다렸어.


“내가 오늘 아지트에서 들었는데... 아줌마가 고양이를 입양한대!”


뚱이는 고양이 한 마리 느는 게 무슨 대수냐고 답답한 소리를 하더군. 이해력이 떨어지는 멍청한 눔...


“그럼... 우리 밥자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난 이제 애들도 밥자리가 필요한데...”


역시 록이가 사태 파악을 신속히 하더군.


아줌마는 가끔씩 우리도 집에서 고양이 키워볼까 몇 번이고 얘기했지만 아저씨가 반대를 했거든. 그런데 결국은 가족회의를 통과한 모양이야. 하긴 어떻게 남자가 부인을 이기겠어.


이제 아지트 데크의 밥자리는 없어지고 말 거라고. 이제 겨우 마을에 정 붙이고 살아보려는 내게는 그야말로 하늘이 두 쪽 나는 소리지. 이 나이에 다시 아파트 밥자리를 떠돌 생각을 하니 아찔했어.


나도 나지만 이제 아이들까지 건사해야 하는 록이는 어쩌라고? 애들까지 몰고 가서 맘 편히 얻어먹을 밥자리가 이 마을에 또 있기나 한 건지... 뚱이 녀석이야 아무 곳이나 가서 잘 비비대고 먹겠지만 말이야.


한 참을 궁리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 거야. 아줌마 얘기를 들어 보면 우리가 많이 친해진 듯은 해도 살갑게 곁을 내주지는 않는다고 하더라고. 그래. 우리가 다정하지는 않지. 하지만 길냥이들은 원래 그래야 한다고! 세상에 얼마나 무서운 인간들이 많은데... 사람 좋아해서 따라다니다가 험한 꼴 당한 냥이들을 줄 곧 보고 살와 왔으니 거리를 유지할 밖에...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해결책이 없더군. 아지트가 사라지면 다시 밥자리를  찾는 수밖에. 언제일지 모르지만 아지트 고양이가 오는 날까지 최대한 자주 가서 먹어 두고 또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는 수밖에.


드. 디. 어 그 날이 왔어! 데크 유리문 안쪽으로 서 있는 사람이 아닌 물체. 순간 깜짝 놀랐지 뭐야.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 인형을 데리고 온건가 싶게 작고 귀여운 아이가 왕방울만 한 눈으로 보고 있는 거야. 움직이더군. 고양이는 맞는가 봐.



아지트에 밥자리가 없어져도 가끔 찾아와서 볼 만큼 예쁜 아가 고양이였어.


안녕, 나미! 반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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