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거 1년 후, 가족의 탄생
어쩌다보니 1년이 지났다. 시골살이를 잘 기록해야지 하고 다짐해놓곤 ... 민망하다. 핑계는 먹고살기 바쁜 현실이라 쓰고, 뼛속까지 밴 게으름이라 읽는다.
2020.02.28 함께 산지 꼭 일년이 되었다. 평생 따로 살던 자기애 강한 두 사람이 합쳤음에도 다행히 큰 싸움없이 별 문제없이 나름 사이좋게 잘 지내는 중이다.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이 된다는 것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연애를 하면서 닌나 씨는 내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자, 베스트 프렌드였다. 같이 살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닌나 씨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었지만 가족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커플들과 달리 "자, 둘은 오늘부터 가족입니다!" 하는 결혼식도, 혼인서약도 없었기에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우리는 한 가족임을 느낀다. 기쁜 일이나 슬픈 일 모두 두 사람의 관점에서 보게 되고, 미래 계획과 대책은 상의해서 하나로 이어지도록 그려나간다. 가족은 혼인 신고서 한 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배운다. 수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끈임없이 대화하고, 타협하고, 상대의 존재 자체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같이 산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연애하던 6년보다 요 1년이 서로에게 더 진득하게 물들었다. 고작 1년을 함께 했을 뿐인데,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묵직한 안정감이 생겼고, 둘 사이 쉽게 끈어지지 않을 끈이 생겼다.
1년을 살면서 가장 큰 변화를 꼽자면 개 아빠의 탄생이라 하겠다. 닌나 씨는 개는 좋아하지만 개를 키워본 적은 없다. 부모님이 키우시니 함께 산 적은 많지만 자신이 돌보거나 한적은 없다. 난 자타공인 개빠다. 유기견 두 마리를 입양해 키우고 있으며, 애지중지하다 못해 물고빨고 떠받들고 산다. 함께 살기 전부터 닌나 씨도 이미 나의 개님 사랑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른 건 다 돼도, 같이 자는 건 안돼."
이사 전 왠만해선 자기 고집을 부리지 않는 닌나 씨가 강경하게 말했다. 10년 가까이 한 마리는 품에서, 한 마리는 머리 맡에서 함께 잤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따로 자다니 상상도 못해봤다. 고집 안부리던 사람이 부리면 무섭다고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걱정과 달리 너무 싱겁게 합방이 이루어졌다. 이사를 했을 당시, 침대가 없었는데 이게 신의 한 수였다. 바닥에 전기 장판을 깔고 자면서 자연스레 개들도 그 위에서 생활했다. 집이 너무 추워서 애들을 거실에 내놓을 수도 없었고, 침대도 아니니 못 올라오게 할 방법도 없으니 어쩌겠는가. 다 같이 오들오들 떨면서 오손도손 자는 수 밖에. 침대가 생긴 지금까지도 말이다.
닌나 씨는 이제 완연한 개 아빠가 다됬다. 사실 이렇게 까지 예뻐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놀라울 정도다. 과거 함께 여행을 했을 때 사진을 보면 얼굴에 우리 안친해요가 써있는데 지금은 나 못지 않게 물고 빤다.
고기 반찬이라도 할라고 하면 애들 준다고 미리 빼놓고, 설렁탕을 사오면 얼음통에 애들용이라며 따로 얼린다. 괜찮다고 해도 오히려 내게 매정하다고 뭐라고 한다. 외출하면 애들 때문에 집에 일찍 가자고 하고, 여행 이야기에는 자연스레 애들도 포함된다. 코로나 전, 올 봄 다 같이 갈 수 있도록 비행기 대신 배를 타고 제주도를 여행하자고 계획을 짜기도 했다.
특히 남실이와 캐미가 어찌나 좋은지, 남실이는 밥 먹을 때도 꼭 아빠 무릎에만 앉고, 잘 때도 아빠 옆에서 찰싹 달라붙어 잔다. 내가 애를 옮기려고 하면 잘 자고 있는데 왜그러냐고 자기가 웅크려 자고, 카톡 프사도 내가 아닌 남실이다. 가끔씩 남실이를 껴안고 서른살까지 살아야한다며 감성에 젖기도 한다.
이제는 내가 출장을 가도 척척 밥도 잘 먹이고 약도 챙겨주고 하루 몇 번씩 산책도 시킨다. 잘 때도 침대에서 꼭 같이 잔다. 이제는 자연스레 이렇게 말한다.
"자기와 나, 남실이와 윤슬이, 우리 넷은 가족이야.
*날이 조금 더 따듯해지면 집 앞에서 예쁘게 차려입고 가족사진을 찍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