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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Apr 23.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10

: 푸릇푸릇 식탁 위에 찾아온 봄 

세상에. 날씨가 미쳤다. 작년 이 맘때는 허브 모종들을 심었는데, 요 며칠 날씨는 냉해를 걱정해야할 만큼 추워졌다. 4월 중순이 넘었는데 강원도에는 눈소식까지 들렸다. 이곳 역시 바깥 바람이 살벌하다. 후리스를 껴입고 글을 쓰고 있다. 


비록 체감 날씨는 겨울이지만, 주위에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연두빛이 만연하다. 얼핏 보면 누런 잔디와 흙바닥 위로 봄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나물들이 빼꼼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덕분에 봄봄한 식탁으로 향긋한 요즘이다. 




"안녕하세요~ 어디 다녀오세요?" 집 앞에서 뒷집 순돌이네를 만났다. 

"조 아래~ 냉이가 잔뜩 올라왔더라고. 국 끓여먹으려고 캐왔지." 


그래! 봄의 시작은 냉이가 아니겠는가!!! 이게 시골생활의 묘미지, 의욕에 차서 아주머니가 알려준 포인트로 향했다. 하지만... 봄 나물도 아는 사람이나 채취하는 것이었다. 닌나 씨와 난 냉이가 어떻게 생긴지 모르는 서울 촌놈 아니던가. 핸드폰으로 냉이의 모습을 검색했지만 둘 다 해태눈인지 도저히 다른 풀과 구분할 수가 없었다. 


허탕을 치고 돌아와 주인집 언니에게 SOS를 쳤다. 

"뭐 거기까지 내려갔어요~ 요 앞에도 냉이가 지천인데." 

"ㅇ_ㅇ;;" 


든든한 지원군 언니와 냉이를 캐러 갔다. 함께 냉이를 캐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물어봐야 했다. 

"언니, 이거 냉이예요?"

"아뇨. 그건 풀이예요." 

잘 모르겠으면 뿌리 냄새를 맡으라고 하는데;; 내게는 다 흙냄새일뿐... 어쨋든 한 바구니 가득, 무사히 냉이캐기를 마쳤다. 언니가 자기가 캔 것도 다 주었다. 자기네는 안 해먹는다며. 


닌나 씨와 마주앉아 손톱이 까매질때까지 손질을 했다. 긴 겨울이 끝나고 오랜만에 느끼는 흙의 감촉이다. 냉이 된장국을 끓이고 일부는 무쳐 나물을 했다. 


세상에, 냉이가 이렇게 맛있었나? 


작년에도 언니네가 주어 냉이 된장국을 끓였었다. 이게 내 서른 중반 인생 첫 냉이 된장국이었다. 우리 엄마는 된장국 보다는 된장찌개 파이다. 작년에는 그냥 된장국 맛(?!)으로 먹었는데, 올해는 맛있어도 너무 맛있다. 구수한 감칠맛이 입에 착착 붙는다. 1년 사이 내 입맛이 변한걸까, 내 요리솜씨가 일취월장 한걸까. 둘 다 라고 자부해본다.  






겨우내 휴식을 취했던 텃밭도 이제 봄맞이로 분주하다. 얼어있던 땅을 고르고 비료를 뿌려 주었다. 텃밭 주변으로 자란 잡초를 뽑고 있는데 주인집 언니가 나왔다. 


그거 씀바귀라고, 먹는거예요!


헉/ 큰일날뻔! 민들레 새싹 비스무리한 것으로, 찾아보니 '이든 봄 씀바귀를 먹으면 그 해 여름 더위를 타지 않는다.'라는 옛말씀이 있을 만큼 몸에 좋다고 한다. 쓴맛이 있다고 하여 데친 후 주인집이 직접 만든 사과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하게 버무렸더니, 고기를 부르는 맛이다.   


: 씀바귀의 변신. 냉동실 아껴두었던 엄마가 준 소고기도 꺼내게 한 맛!:  


우리 둘 다 가장 좋아하는 봄 나물은 달래이다. 알싸한 맛과 향이 (잃어본 적 없던) 입맛을 돌아오게 한달까. 앞 마당 철쭉들 사이로 달래가 자란다. 역시나 일반 풀과 모양으로는 구분을 못해, 달래가 자라는 자리로만 기억한다. 우리 마당 외 달래는 구분하지 못한다는게 함정;; 


달래를 캤다. 작년엔 제법 씨알이 굵었는데 올해는 잘다. 총총 썰어 달래장을 만들었다. 달래장엔 콩나물밥이 빠질 수 없다. 밥 한 공기 뚝닥이다. 닌나 씨가 식당을 해도 되겠다며 비행기를 태운다. 이 맛에 요리를 한다. 


작년 이 맘때 달래가 뭔지도 모르고, 할줄 아는건 라면 밖에 없고, 채소 싫어 편식왕이었던 내가 참 많이 달라졌다. 아니, 우리가 참 많이 달라졌다. 


: 닌나 씨가 만들어준 달래 파스타 : 




봄하면 쑥이 빠질 수 없다. 그래! 이건 우리도 구분할 수 있는 거다. 대표 봄 요리로 도다리쑥국이 있지만, 도다리는 살 돈 없는 우리는 쑥 수제비를 만들기로 했다. 


마당에서 뜯은 쑥을 갈아 밀가루와 섞어준 후 마구 치댄다. 쫄깃해져라, 쫄깃해져라 주문을 외우면서! 반죽은 처음이라, 될까 반신반의 하며 같이 조물거리고 있자니 소꿉장난 하는 기분도 들었다.  모찌모찌한 반죽이 완성되면 2시간 정도 숙성시켰다 멸치육수에 똑똑 떼어 넣어주면, 봄 한 그릇이 완성된다.  


남실이 산책 겸 순돌이네 집으로 마실을 갔다. 아주머니가 마침 쑥전을 구웠다며 들고 나오신다. 얼마전 이사온 순돌이네 옆집까지 모여 길 한 복판에서 박스를 깔고 급 모임이 펼쳐졌다. 날씨가 좀 따듯해지면 막걸리를 들고 제대로 전 파티를 하기로 했다. 쑥전은 처음인데, 밀가루보다 쑥 양이 더 많다. 


 

진한 쑥향기가 입안 가득-
내 안의 봄이 찾아왔다. 


도시에서는 절대 못 느껴보았던 맛과 즐거움이다. 앞만 보고 가기도 바쁜데 땅을 보며 한낱 잡초에게 관심을 가질 리 만무하다. 천 원짜리 한두장이면 무슨 나물이든 한 봉지 가득 쉽게 살 수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는 소소함을 놓치고 있는 걸까. 


발끝에는 돗나물이 자라고 있다. 이 주 정도 지나면 제법 커질것 같다. 새콤한 양념에 버무려 먹는 싱그러운 식감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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