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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May 03.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12

: 이 봄, 우리 소풍갈까요?  

: 닌나 씨가 담아준 우리의 봄 날:


이 봄의 끝을 잡고- 

봄과 여름 사이. 눈을 돌리는 곳마다 연두빛이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보드랍다. 집에만 있기 너무나 아까운 날이다. 이 짧은 찰라를 누리러 집 근처로 피크닉을 가기로 했다. 나랑 닌나 씨, 남실이와 윤슬이 온 가족이 함께! 이 얼마만에 쐬는 콧바람인지, 설렘에 전 날 밤 잠을 설칠 정도였다. 이 나이에 말이다. 


당일 아침 피크닉 바구니를 꺼냈다. 어렸을 때 집에 하나쯤은 있었던 라탄으로 된 바구니이다. 우리 집 역시 가족 소풍을 가는 날이면 엄마는 김밥과 삼겹살(?!), 과일 등으로 가득 채웠다. 세월이 흘러 저런 물건들이 촌스럽게 여겨지면서, 우리 집에서도 자취를 감췄다. 


다시 마주한 곳은 당근 마켓. 3만원에 올라왔는데 얼마나 탐이 나던지! 별로 필요가 없고 비싸다며, 좀처럼 안된다던 닌나 씨에게 떼를 쓰고 우겨서 겨우 산 보물이다. 막상 산 후에는 (닌나 씨가 말한데로) 쓸 일이 없어 옷 얹어두는 용(?!)으로 쓰고 있었는데, 드디어 빛을 발할 때가 된 것이다. 

 


소풍에 도시락이 빠질 수 없다. 재료가 없어 김밥은 패스. 대신 닌나 씨표 주먹밥을 만들기로 했다. 밥에 소금간을 하고 가운데 진미채를 넣어 세모세모하게 모양을 잡아줬다. 밥이랑 이나 멸치볶음이 있다면 좋겠지만 없으면 없는데로 만족해야 한다. 밥이 굳는 걸 방지하기 위해 김으로 둘러 싸줬더니 시커먼 도시락이 됬다. 


밥만 먹으면 목막히니 국물도 필요하다. 김치 사발면! 봉지라면을 선호하는 우리지만, 사발면 만큼은 컵라면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편의점 표 디저트 청포도 파이까지 곁들였다. 편돌이가 된 닌나 씨 덕에 누리는 호사다. 아참, 가장 중요한 걸 빼먹었네. 시원한 캔맥주 2캔까지! 소풍 준비 끝! 



장소는 집에서 5키로 떨어진 봉은사이다. 절간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고 절 앞에 인공 연못과 테이블이 놓여있는 쉼터가 목적지다. 우연히 벚꽃길을 따라 드라이브하다 발견했는데, 피크닉 장소로 점찍어뒀다. 도착하니 이미 커플 한 쌍이 치킨과 이것저것 사들고 와서 앉아있었다. 


먼지가 까맣게 내려앉은 테이블 위로 테이블보를 깔고 상을 차렸다. 조촐한 한 상이지만 제법 그럴 듯 하다. 바구니 덕분이라고 큰 소리를 쳤다. 밖에서 먹는 음식은 또 어찌나 꿀맛인지!! 그냥 밥과 진미채일뿐인데 호들갑을 떨며 먹는다. 역시 김치 사발면은 옳다며. 여름이 오기전 한 번 더 오자며. 그 때는 치킨도 들고 오자며. 

 

옆 커플도 가고 우리만 남았다. 어찌나 고요한 지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가 커다랗게 들릴 정도다. 평화롭다. 살랑이는 바람을 타고 꽃잎이 음식 위로 떨어졌다. 우리는 이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기억도 나지 않은 이야기들을 조잘거리며. 돈 문제로 걱정이 많은 요즘이지만 다 괜찮다고 느껴졌다. 이런 삶도 나쁘지 않다고. 



"... 담배 다 떨어졌어..." 

집에 가려 쓰레기를 챙기는데 닌나 씨가 조심스레 말했다. 


"어제 말하지. 편의점 갔을 때 뭐 필요한거 있냐 물어봤잖아." 

"미안... 돈도 없는데... 얘기하기 좀 그래서..." 

"여기서 슈퍼 가려면 또 기름값들잖아. 돈도 없는데 담배 좀 줄이면 안돼?"


정말이지 돈, 돈 거리고 싶지 않았는데. 가뜩이나 힘든 시기인데 고작 담배가지고 기죽이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걸로 눈치보게 만들기 싫었는데, 저런 말이 튀어 나와버렸다. 곧바로 미안하다 했지만 한 번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다. 


불편한 마음으로 담배를 사러 좀 더 큰 마을인 목계로 향했다. 목계는 과거 나루터가 있던 곳으로, 남한강이 굽이 굽이 흐르는 무척 아름다운 동네다. 목계에 들어서니 강변이 온통 노란색이다. 그러고보니 작년 이맘때 여기서 유채꽃 축제를 했었다. 올해는 코로나로 축제는 취소 됬지만 유채꽃은 그래로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딱히 많이 찾아오는 곳이 아니라 꽃밭을 뒤집지 않고 냅둔 모양이다.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둘 다 어린아이 마냥 신났다. 사진 찍기 바쁘다. 예쁜 가족 사진을 건졌다. 다시 기분이 맑아졌다. 사춘기도 갱년기도 아닌데 하루에 기분이 대체 몇번이나 오락가락하는건지. 이 또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다독여본다.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문구가 떠올랐다. 


 

결혼이란, 한 바탕 싸우고 집을 박차고 나가서는
나간 김에 장을 봐서 들어오는 것! 


봄의 끝을 잡고 우리도 영글어간다.  

: 언제나 웃을 순 없겠지만. 우리, 꽃길만 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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