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난나 씨 Aug 24.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23

: 슬기로운 시골생활, 벌레와 비와의 전쟁-

: 이 아이는 자라서... :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 이었을까? 


작년 난생 처음 해본 텃밭은 대성공이었다. 상추, 오이 등 매일 매일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만큼 채소가 풍요로웠으며, 토마토는 너무 많이 열려 선드라이드 토마토를 만들어 페이스북 지인들에게 팔 정도였다. 가지와 애호박은 어찌나 많이 달리는지 안해본 요리가 없을 만큼 다양하게 만들어 먹고도 여기저기 나눠주기 바빴다. 고추, 깻잎으로 장아찌를 담그고 고구마 순으로 김치도 담그며ㅡ 서리가 내리기 전까지 정말 알차게도 먹었다.  


그런데 올해는 만만치않다. 고작 1년차 초보 농부지만 작황량이 작년과 다르다는 것이 확연하게 보일 정도다. 모종들이 어느정도 자란 6월쯤 부터 하얀 알맹이 같은 아주 작은 벌레가 데크와 밭 곳곳에서 보였다. 처음엔 벌레인지도 모를 만큼 예쁘게 생긴데다 건들이려고 하면 톡톡 튀어 달아나는 모습이 귀엽기 까지 했다. 정체를 알기 전까지 말이다. 


이 아이들의 이름은 미국산 선녀벌레. 모든 식물을 아낌없이 갈아먹으며.....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존재 .... 나방으로 성장한다. 


나는 벌레가 싫다. 이미지보면 소름이 돋아 검색도 못할 만큼 무서워한다. 어떻게 시골 살 생각을 했는지 참으로 용기가 가상하다. 모르니까 용감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이토록 다양한 종류의 벌레가 있음에 아연실색했고, 꿈틀거리는 무언가 나타나기만 하면 비명을 지르고 닌나 씨를 찾기 바빴다. 이제는 그래도 나름 시골살이 1년차라고 조금은 무덤덤하게 놀라며 몇몇 종류는 조용히 슬리퍼를 들어 죽일 수 있을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나방은 그에 속하지 않는다. 푸드드드득 날개짓을 하는 모습과 통통한 배는 여전히 공포다.  


내가 있는 충주를 포함해 제천, 원주 등 주변도시들의 방역에 빨간 불이 켜졌다. 지난 겨울이 너무 따듯해 온갖 해충들이 얼어죽지 않고 다 부화해버린 것이다. 이쪽 지역은 미국산 선녀벌레와 매미 나방의 피해가 심각했다. 


매미 나방은 어찌나 큰지 정말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오바를 많이 보태서 참새만하다. 적어도 내눈엔. 하얀색이 암컷이라고 하는데 자세히 보면 주황색 알집을 달고 있는 것도 있다 (으아아아아악!!!!!!!! 쓰면서도 소름이....) 과외하는 아이 학교 운동장과 수돗가 주변에도 나방 시체와 알집들이 떨어져있다고 했다. 닌나 씨가 일하는 편의점 건물 벽면 여기저기에도 알집을 붙여놔 미칠노릇이라고 했다. 저녁 시간에 일한 뒤면 나방 몇 백마리를 사살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난 야간 알바 절대 못하겠구나;; 그래, 계속 많이 죽여줘 ㅠㅠ 


텃밭에 약을 치지 않고 키우는 지라 피해가 심각했다. 호박잎들은 누렇게 죽어가고, 깻잎은 해충들의 배설물로 추정되는 하얀 진액에 뒤덮여 말라갔다. 보다 못해 인터넷으로 살충제를 샀다. 모두 싹이라는 유기농 친환경 살충제다. 살충제를 뿌려는 자동 분사 분무기 기계도 샀다. 일반적으로 20리터 짜리 말통을 쓰는 것 같은데 우린 밭이 작아 2리터 짜리로 샀다. 


자비란 없다. 다 죽어벼릴 테다!!!!! 결심한 그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면 약이 씻겨 내려가므로 맑은 날 뿌려줘야한다. 그런데... 비가 그칠 생각을 안한다. 50일이 넘는 역대급 장마가 시작한 것이다. 


: 옥수수도 냠냠, 깻잎도 냠냠 :




지긋지긋할 만큼 우중충한 날들이 계속 되었다. 충북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린 곳은 충주시 엄정면, 바로 옆 동네다. 뒷집 순돌이 아주머니네 친정이 있는 곳이다. 다음날 괜찮으신지 연락을 드리니, 자기도 걱정되서 가다가 도로가 잠겨 다시 집에 왔다고 하셨다. 그 정도라니. 친정집 근처 저수지가 터져 여러 집이 휩쓸려 갔는데 다행히 어머님네는 큰 피해가 없다고 하셨다.  


순돌이네 집도 바로 산 아래라 괜시리 걱정이 되었다. 하루는 닌나 씨가 밤에 담배를 피러 나갔는데, 묵여 있어야할 순돌이가 내려온 것이다. 혹시 무슨일이 생긴 것일까.  순돌이가 위험을 알려주려 내려왔나. 온갖 나쁜 상상이 들고 너무 놀라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 별 일없는 순돌이의 탈출극이었다. 순돌이를 데려다주고 오면서도 철렁한 가슴을 달래야했다. 


어머어마한 양의 비가 쉼없이 내렸다. 다리가 잔뜩 있는 벌레가 집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지네인줄 알고 식겁해 찾아보니 노래기 라는 벌레였다. 습한 날씨에 창궐한다고 한다. 지네같은 독도 없고 해충도 아니라지만 징그러운건 징그러운 거다. 특히 닌나 씨가 밤에 담배를 피러 나가면 데크에 수백마리가 기어다닌다고 했다. (으아아아악!!!!!)


우리집엔 그 흔한 에어컨도 제습기도 없다. 집 안의 습도가 정말 홍콩 부럽지 않았다. 문을 열어놓지 못하니 후덥지근함과 끕끕함이 온집안을 채웠다. 이불과 수건에선 냄새가 났다. 그때 그분이 오셨다. 벽한켠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초록색 정체. 곰팡이였다. 지난 집에서 곰팡이한테 호되게 당한 닌나 씨와 후다닥 락스물을 희석해 박박 닦았다. 


잡초들은 신이 났고, 농작물은 죽어갔다. 장마가 끝난 뒤 살펴보니 - 처참했다. 상추와 청경채는 썩었고, 그것들을 노래기들이 맛있게 먹고 있었다. 멋모르고 뽑았다 노래기 더미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토마토와 옥수수도 누렇게 말라 전멸했고, 당근과 비트도 다 썩어 악취를 풍겼다. 이것만으로도 맴찢이었는데 전문적으로 농사짓는 농부들의 마음은 어떠할지 감히 해아릴 수가 없다. 


: 굿바이. 내 토마토들... :
:  장마에 떨어진 파지 복숭아, 이웃이 나눠주었다  :


이번 한 주는 밭 정리로 분주하게 보냈다. 죽은 작물들을 뽑고 정리해주고 손에 잡히는 데로 잡초를 뽑았다. 다행히 고추는 큰 피해가 없었다. 물을 많이 먹어 일부는 주둥이 부분이 터져 떨어지긴 했지만 제법 열린데다 요 며칠 햇볕을 받더니 빨개졌다. 물 먹고 쑥쑥 큰 왕 애호박과 가지도 따주었다. 무더위가 괴롭지만 깔끔해지면서 나름 자리를 잡아가는 밭을 보니 왠지모르게 힐링이 되는... 잡초뽑기는 변태같은 중독성이 있다. 


밭일 하는데 가장 힘든 것은 뜨거운 태양도 아닌 바로 모기다. 어찌나 앵앵대며 달려드는지, 모기 기피제도 소용이 없다. 철물점에서 사방에 망사가 쳐진 모자를 살까 진심으로 고민중이다. 이 더운 날에도 긴 소매와 긴 바지는 필수인데 다 뚫는다. ㄷ ㄷ 군복이라도 입어야 하는 걸까;; 


장마가 너무 길어서인가, 아직 제대로 여름을 시작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말복이 지나고 입추가 지났다. (그러고보니 올해 삼계탕 한 번 못먹었구나;;) 지난 번 산 살충제도 아직 한번 못썼는데. 놀랍게도 벌써 다음주면 김장 배추와 무를 심는 시기다. 얼른 퇴비를 뿌리고 밭을 최대한 깊이 깊이 뒤섞어 갈아주었다. 


시골에 산다는 건 정말 날씨와 벌레와의 전쟁이 맞다. 생생하고도 혹독하게 깨달은 여름이다. 태양은 아직도 뜨거운데 아침 저녁으로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다. 동그란 달빛이 창으로 스며들듯 가을이 오고 있다. 


: 정리 후 배추와 무를 기다리며 휴식 중인 땅 :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2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