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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 씨 Sep 02. 2020

어쩌다보니 시골, 어쩌다보니 동거 #24

: 아픈 현실, 로드킬과 마주하기- 

(c) scent_of_doodle


시골로 온 후 이상한 운전 습관이 생겼다. 시골길을 운전할 때 중앙선을 살짝 걸쳐서 하는 것이다. 인도가 따로 없다 보니 사람들이 걷고있기도 하고, 자전거나 경운기가 주차되어있거나, 동물들이 깜짝깜짝 나타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운전을 하다 고양이는 물론, 고라니와 너구리도 마주친 적이 몇번 있다. 깜짝 놀라긴 했지만 신기하고 귀엽다며 닌나 씨와 호들갑을 떨며 좋아했다.   


하지만 늘 그렇게 좋은 모습만 보는 것은 아니다. 이사 온지 세달만에 평생 본 로드킬 보다 더 많은 수의 죽음을 목격했다. 짖밟힌 아기 고양이부터 형체를 알 수 없게 찢겨진 고라니까지. 일년이 지난 지금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을 침범한 인간인 것이 그저 미안할 뿐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닌나 씨와 난 로드킬을 보면 이렇게 빌어준다. 둘 다 불교는 아니지만 다음 생에 더 좋은 생으로 환생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시골의 밤은 무척이나 깜깜하다. 마을을 벗어나면 반경 7km 내는 가로등이 아주 띄엄띄엄 있다. 가뜩이나 밤눈이 어두운 나는 밤에 운전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얼마 전 마트에서 일했을 때다. 9시에 퇴근이라 어쩔 수 없이 밤운전을 해야 했다. 시내까지 국도가 잘 뚫려있지만 우리집과 국도 사이엔 작은 산을 하나 넘어야 한다. 

 

그 날도 어김없이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고 있었다. 도로 가운데 꼬물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후다닥 달아났다. 그리고 그 아기고양이가 있던 자리에는 다른 아기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어떻하지. 차를 새우고 봐야하나. 아직 깨끗한 상태인거 같은데 갓길로 옮겨줘야 하나. 생각을 하면서도 패달은 밟고 있었다. 잠깐 차를 세웠다. 하지만 용기가 없었다. 이 깜깜한 밤길을 후진으로 돌아갈 자신도 (좁아서 돌릴수는 없다), 걸어갈 자신도, 그리고 죽은 생명을 마주할 자신도. 


그 날밤 잠이 오지 않았다. 얼핏 봤지만 아이가 깨끗해 보이던데 내가 옮겨줬으면 살지 않았을까. 친구를 잃고 지키고있던 아이마저 로드킬을 당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 날도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어김없이 그 도로를 지났다. 아이의 흔적이 보였다. 어제와 달리 짓밟혀 터진 상태였다. 괴로웠다. 내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어김없이 퇴근 시간이 왔다. 운전대를 잡으니 아이의 잔상이 보였다. 또 다시 그 산. 그 곳에 다다르자 후다다닥 - 다른 고양이 한 마리가 그 아이의 주위에 앉아있다 도망을 갔다. 그 아이의 엄마로 보였다. 


집에 도착해서 닌나 씨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나 때문이라고. 내가 어제 못 옮겨줘서 처참하게 죽었다고, 게다가 다른 고양이들도 치어 죽게 생겼다고. 지금이라도 가서 애기 옆으로 치워주자고. 닌나 씨가 한참을 안고 달래주었다. 그리고 같이 기도해주었다. 


너를 위해 기도한 누군가가 있어, 꼭 천국으로 가길. 용기가 없어 정말정말 미안해. 

 



요즘은 일주일에 1번 밤운전을 한다. 닌나 씨가 매주 수요일 편의점 마감을 하기 때문이다. (시골 편의점은 24시간이 아니다) 밤 11시 30분까지 데리러 가는데 정말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길이 이어진다. 혼자가기 무서워서 꼭 남실이를 데리고 간다.  


지난주 수요일. 깜깜한 도로 위 무언가 누워있었다. 얼핏 보면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것- 고라니였다. 도로 한 가운데 쓰러져있어 천천히 지나면서 보니 고라니 새끼였다. 아직 누군가 밟고 가기 전이었다. 편의점 옆에 바로 소방서가 있어 문을 두드렸다. 


로드킬 당한 고라니가 도로 한가운데 있어 제 2차 사고 위험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알겠다며 위치를 물어보시는데 아뿔싸. 멘붕으로 도대체 어디쯤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있다고만 말씀 드렸다. 나중에 닌나 씨를 태워 돌아오는 길에 보니 내가 말한 지점보다 훨씬 더 떨어져있었다.


다음날은 닌나 씨가 편의점 오픈을 하는 날이었다. 고라니는 아직 그자리에 있었다. 다행히란 말은 잔혹하지만 아직 누군가 밟고 지나가기 전이었다. 밝을 때 보니 웅덩이처럼 고인 피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정말 끔찍하고 마음이 아팠다. 


로드킬 신고 번호를 찾았다. 먼저 교통공사에 전화를 걸자 고속도로만 신고 가능하다며 국도는 지자체로 연락을 하라고 했다. 원주 시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당직하는 분이 받으셨고 친절하게 처리해주셨다. 이번에는 위치를 정확하게 말씀드렸다. 


몇 시간 뒤 닌나 씨를 데리러 가는 길. 고라니와 핏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늘도 수요일이다. 두 시간 뒤면 닌나 씨를 데리러 가야한다. 유난히 안개가 짙은 밤이다. 제발 길위의 생명들이 무사하길. 제발 참혹한 참상과 마주하지 않길. 제발 내가 그 아이들을 해치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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