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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Jun 10. 2022

인생사 사필귀정

인풋 없는 아웃풋은 웬만하면 없다.

  전형적으로 사람이 있어 보이는 아이템이 있다. 대표적으로 클래식을 좋아한다거나, 혼자서 위스키 바를 다니는 취미가 있거나, 글을 쓴다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예시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지만 보편적으로 있어 보이는 만고불변의 아이템이 있는데 바로 다룰 수 있는 악기가 있는 것이다. 피아노는 물론 플룻이나 바이올린 등을 연주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자기소개를 들으면 상당히 교양인처럼 보이는 후광 효과가 있다.


  나 또한 몇 개의 악기를 다룰 줄 안다. 정확히 얘기하면 참 애매하게 다룰 줄 안다. 피아노를 칠 줄 알지만 이제는 손이 굳어 몇 개의 래퍼 토리로 돌려 막는 수준이고 바이올린도 배웠지만 지금은 손 끝이 너무 말랑해서 현 위에 손가락을 올리는 것조차 버겁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음악적 교육열을 돌이켜보면 지금 나의 수준은 안타까울 정도이다. 그렇게나 배웠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어이하여 나는 요정도에 그치고 말았을까. 현재의 나를 옹호할만한 기깔나는 사연이 있으면 좋으련만, 별 다른 역사는 없다. 그냥 어린 내가 참 게을렀다.

  등록과 출석 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의 내가 그랬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학원을 다니는 자체에 이미 이루고 싶었던 것을 다 이뤘던 걸까. 나는 참으로 게으른 학생이었다. 그 시절에 음악 학원을 다닌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보통 선생님들이 악보 한 켠에 혹은 알림장 한 켠에 동그라미를 그려주며 이 숫자만큼 연습하고 연주를 완료하면 작대기를 그으라고 숙제를 내준다. 성실하게 테스크를 완료하는 학생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일타이피 삼피 혹은 사피 권법을 쓰며 1 연주 4 작대기 기법을 사용했다.

  그때는 연습이 참 부질없이 느껴졌다. 어차피 나는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니고 취미로 즐기는 수준인데 이토록 손이 아플 정도로 몰입하는 게 와닿지 않았다. 내가 두 번을 연습하던 열 번을 연습하던 아웃풋에는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전문가의 귀는 단박에 나의 연습 부족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허나 소 귀에 경읽기라고 옳은 말을 해도 소화하지 못할 어리석은 제자에게는 잔소리조차 해주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중학교에 올라가는 시점에 공부라는 핑계로 악기는 접었으며 그렇게 나의 음악 라이프는 일단락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등학생이 되면서 나의 연주 혼이 불타올랐다. 대개 성장 시절에서 청개구리 성향을 띠듯 나도 다 커서 악기, 특히 피아노에 대한 욕망이 불타올랐다. 고교 시절의 공부는 너무나도 힘들었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건반을 치기 시작했다. 분명 다 배웠던 곡인데 다시 연주하려니 어렵고 손가락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수 2도 푸는 사람이다.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마인드 컨트롤로 스스로를 다잡았고 그렇게 뒤늦게 피아노 실력을 쌓아나갔다. 정말 웃기기도 하지. 돈 주고 배울 때는 게으름을 피우다가 이제서야 연주에 빠지다니.

열심히 연주했던 곡 중 하나.


  그 당시에 뻔하디 뻔한 교훈을 배웠다. 인생은 사필귀정이다. 대충 거짓말로 작대기를 그을 때는 좋았지만, 나태와 태만은 나에게로 고대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이후로는 조금 더 책임을 지는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지금 최선을 다하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물론 일순간의 다짐만으로는 갱생이 힘들고 아직도 나는 곧잘 미루고 있지만 이렇게 글을 쓰며 다시 한번 삶의 태도를 다짐하고 있으니 100점은 아니더라도 70점은 되는 어른이 아닐까 싶다.

  ... 총점이 100점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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