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시간의 비행 끝에 상파울루에 도착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얼굴을 덮치는 뜨뜻하고 눅눅한 공기가 브라질을 실감하게 했다. 너덜너덜한 몰골을 수습하고 여독을 회복하기도 바쁘지만,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았다. 통신사 개통하기, 은행 계좌 열기, 어학원 등록하기, 외국인 등록증 (RNE) 신청하기 등 많고 많은 숙제가 있었지만 가장 급한 것은 바로 부동산이었다. 일 년 동안 살 곳을 2주 안에 구하는 것, 그것이 최우선순위었다.
서울에도 집에 없는데 상파울루에서 감히 집을 구하려고 한 것부터가 나의 잘못이었던 것일까. 몇 가지 앱을 통해 한국에서부터 상파울루의 부동산을 탐색하며 준비했으나, 여유와 느긋 그리고 파토의 나라 브라질에서는 나의 준비가 빛을 발하기 어려웠다. 만나기로 한 중개인이 연락이 안 된다던지, 갑자기 약속 날짜를 변경하는 등 매물을 구경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브라질식 직방 같은 앱 비바헤알. 비슷한 앱으로 QuintoAndar(낀뚜 안다르) 가 있다.
게다가 서울보다도 넓은 상파울루이지만 학교나 학원과의 거리, 치안이 안전한 동네, 내가 원하는 집의 조건, 매물의 상태를 고려하면 선택지는 좁아져만 갔다. 무엇보다 월세 수준이 서울을 훌쩍 뛰어넘었다. 물론 한국처럼 높은 보증금은 없었지만 체감상 서울보다 월세가 더 비쌌다. 브라질의 GDP가 한국의 1/3 보다 적은 수준인데, 도대체 어떤 브라질인이 이 고급 맨션에 사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여러 장애물을 넘어 어쩌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해도 바로 계약을 할 수 없었다. 브라질의 월세 계약은 보통 36개월을 기준으로 한다. 내가 희망한 12개월 계약은 단기계약에 속했다. 단기계약, 그것도 외국인과의 계약은 집주인들에게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었고 몇 차례의 시도와 불발 끝에 점차 용기는 사라졌다. 같이 간 일행 모두 각자의 고생을 겪었다. 계약서를 작성하다 엎어진 경우, 갑자기 조건을 변경하는 경우, 외국인이니 대면 인터뷰를 하고 입주를 결정하겠다는 경우 등 상상하지 못한 다채로운 변수가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집을 구하는 외국인들도 나처럼 힘든 걸까, 아니면 여기가 브라질이라 힘든 걸까. 한국에 돌아가면 외국인들에게 더 친절하게 대해주어야지. 나에게 주어진 2주라는 시간이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부동산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 집 계약 된대요, 메일로 계약서 보낼 테니 전자서명해서 보내주세요."
이 얼마나 기다리던 말인가. 해외에서 가장 조심해야 하는 사람은 한국 교민이라는 말도 있지만, 적어도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는 한국 교민 사장님이 나에게 도움을 주셨다. 나는 사장님의 따님과 동갑이었고, 그때부터 사장님께 브라질 엄마라고 불렀다. 역시나 모정은 위대했다.
크지 않지만 거실과 방이 분리되었고 널찍한 베란다가 있는 신축 건물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멋들어진 수영장과 깔끔한 헬스장, 여기에 공용 공간까지 갖추어져 일 년 동안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집에서 3분 거리에는 슈퍼마켓이 있었고 집 근처에는 서 너 개의 은행과 두 어개의 약국, 그리고 여러 레스토랑이 위치했다. 10분만 걸어가면 상파울루의 상징 이비라뿌에라 공원이 있는 것은 덤이었다.
그동안 몇 번의 통수를 맞았기에 이번에도 한 손으로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한 손으로는 뒤통수를 감싸고 혹시 모를 시련에 대비했다. 아주 약간의 실랑이와 사사로운 갈등이 있었으나 앞서 겪은 역경으로 인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결국 나는 통창이 아침과 저녁을 비춰주는 멋진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다. 입주 첫날, 집을 닦고 쓸며 창 밖을 바라보았다. 브라질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안정감이 들었다. 그렇게 본격적인 브라질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에서 바라본 상파울루의 모습.
소소한 브라질살이 꿀팁
1. 부동산 중개인과 연락할 때는 최대한 일정을 확인하되, 만약 틀어져도 스트레스받지 않기. 정신건강에 해롭다.
2. 가구는 물론 식기까지 전부 포함된 집의 경우 계약 전 변경이 필요한 부분을 미리 이야기하고 조정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TV 사이즈를 더 키웠다.
3. 입주가 결정되면 Vistoria(비스토리아, 입주 전 점검)가 이루어진다. 내가 이사 오기 전에 이미 망가진 부분이 있으면 가급적 동영상으로 모두 기록하고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계약서에 기재된 식기/가구/기타 집기가 모두 구비되어 있는지 꼼꼼하게 확인해야 한다. 만약 계약서와 비교해서 부족한 부분이 있거나 다른 부분이 있다면 부동산 업체를 통해 바로 전달하는 것이 좋다.
계약 기간이 끝나는 기간에 또 Vistoria가 진행되는데, 이후 다음 세입자를 위해 집 상태를 깔끔하게 정돈해야 한다. 이때 내가 만들지 않은 하자까지 수리하라는 요청이 있을 수도 있으니 입주 전에 찍었던 영상을 증거로 협의를 해야 한다. 따라서 집 안의 하자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하기 하기 위해서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는 것이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