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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링기 Nov 19. 2024

브라질 4화 _ 두유 노 비티에스? 한인타운 방문기

한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과장인가

  몇십 년 전에는 외국 생활이란 한국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그리운 조국의 음식을 쉽게 먹을 수 없으며 비슷한 식재료로 얼추 그 맛을 흉내 내는데 그쳐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2024년. 상파울루 기준으로 한국 가격보다 1.5배에서 2배 정도 지불하면 웬만한 한식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이민 1, 2세대의 노력으로 한인 타운도 잘 갖추어져 있다. 상파울루에도 유명한 한인 타운이 있는데, 바로 봉헤치로 (Bom Retiro)이다.

  파울리스타 대로에서 20-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봉헤치로는 각종 한국 식재료 및 음식을 파는 오뚜기 슈퍼 - 연매출 규모가 중소기업을 넘어 중견기업이라는 소문이 있다. -, 한국식 머리를 잘라준다는 진 헤어 - 항상 그렇지는 않다.- , 상호명부터 설레이는 우리 엄마 김치 -맛은 있지만 가격은 남의 집 엄마- 등 한국의 거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동네이다. 특히 매주 토요일은 거리 한쪽에서 축제가 있다고 하여 기대감을 안고 우버를 타고 상파울루의 북쪽으로 올라갔다.  

예의, 청렴, 인내. 그의 한글 타투가 눈을 사로잡았다.


  3월의 끄트머리였다. 작열하는 태양을 느끼며 축제 거리로 들어서자 더한 열기가 덮쳤다. 떡볶이, 핫도그, 파전 등 한국 음식을 종류별로 팔고 있는 간이음식점들이 몰려있었다. 뜬금없이 BTS의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있었다. 하이브와 합의는 되신 건가요, 묻고 싶었으나 꾹 참았다. 거리 끝에는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고, 한인 교회에서 아주 즐거운 CCM을 부르며 춤과 노래를 선보이고 있었다. 아시아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브라질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며 핫도그와 소맥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이 더위에 이게 맞는 걸까, 고민했지만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 치즈 떡볶이와 음료를 주문했다. 인파에 밀려 20분 만에 주문을 하고 또 20분을 기다려 떡볶이를 받아왔다. 묘하게 덜 맵고 더 단 맛이 내가 어디 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이 사람들에게 엽기 떡볶이를 먹여야 하는 건데. 브라질화 된 떡볶이의 맛을 최대한 음미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보았다. 더웠지만 즐거웠다.

치즈 떡볶이는 35헤알, 약 9천원 수준이었다.


"Você tá onde? (어디에서 왔어?)"

갑자기 훅, 질문이 들어왔다. 밝은 미소의 브라질 중년 여성이었다. 책에서 본 것처럼 물어보다니. 신기했다.

"Sou da Coréia, Coréia do sul. (한국, 남한에서 왔어.)"
"Legal! (멋지다!)"

  그렇게 시작된 스몰 토크는 약 10분을 넘게 이어졌다. 두 시간 넘는 거리의 도시에 살지만 이 축제가 궁금해서 왔으며, 나는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이 떡볶이가 정말 한국 떡볶이 스타일인지 물어보았다. 한국 떡볶이보다는 덜 맵고 달다고 솔직히 이야기해 주자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것으로 짐작건대 그녀에게 매운 음식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브라질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인스타 팔로잉으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브라질. 10분 만에 아주 얕은 인간관계를 손쉽게 맺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디에선가 귀에서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어느새 홀리했던 CCM에서 둠칫거리는 K-POP으로 음악이 바뀌었다. 무대를 보니 브라질의 10대 소년, 소녀들이 각을 잡고 K-POP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세상에. 지난 몇 년 동안 한국의 문화가 유명해졌다고 믿고 있었으나, 한 편으로는 뉴스에 나오는 대단한 성과들을 보며 혹시 국뽕 프리즘으로 인해 과장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곤 했었다. 허나 나의 의심은 브라질 상파울루 한 복판에서 재현되는 군무로 인해 스르륵 녹아버렸다. 엄청난 칼각으로 안무를 맞추는 브라질의 청소년들을 보니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많은 K-POP 스타들에게 경외가 느껴졌다.


  사실 브라질에서 적응할 때 한국인이라는 점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드라마나 가수 이야기를 하며 손쉽게 친해졌다.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중국어를 쓰는지 일본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대신 이 드라마를 보았는지, 이 가수를 좋아하는지 등 간단한 관심 토크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었다. 대한민국 만만세였다.

그렇게 막연하게 한국의 위상을 상상하다가 한인타운 한가운데서 한류의 위상을 체감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피곤했지만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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