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유명한 고깃집에 갔다.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고기 4인분을 시켰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데다 세미나 한다고 격한 토론을 했더니 배가 고파서 고기가 익기를 차분히 기다리기 어려웠다.
"공깃밥 먹을 사람?"
일행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일단 고기를 먹고 나서 공깃밥을 먹을지 말지 결정하겠다는 뜻이리라. 우리 사회는 이미 밥 중심이 아닌 고기 중심으로 바뀐지 오래다.
"사장님, 김치찌개 하나에 공깃밥 하나 주세요!"
두툼한 고기가 익기 전에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와 공깃밥이 나왔다. 서둘러 뚜겅을 열고 숟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 공깃밥에 밥은 어설프게 절반 가량이 들어 있었다. 그래도 밥집인데 공깃밥을 너무 조금 주는 것 아닌가 싶었다.
물론 2000원을 받는 곳도 많은데 이 가게는 1000원이라서 양을 줄였다 생각할 수도 있고, 또는 고기로 배를 대부분 채우다보니 밥은 그냥 살짝 거들뿐이어서 남기는 사람들이 많으니 애당초 공깃밥 양을 줄였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지만 한 편으로는 그래도 그렇지 너무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마다 공깃밥 양은 정말 제각각이다. 공깃밥 양은 정해진 것이 있는지? 아니면 그냥 사장 맘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쌀이 부족한 시대에 공깃밥 그릇 규격이 있고, 4/5 이하만 담아야 하고 어기면 영업정지 등의 취소를 할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법적으로는 적게 주는 것은 문제가 없나보다. 물론 꾹꾹 눌러 준다고, 고봉으로 밥을 준다고 행정규제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날 아침이 일요일이라 문 연 식당을 찾기 어려웠다. 한참 발품을 판 끝에 해장국집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이른 시간에 식당안은 빈 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종업원들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황태 해장국 세 그릇을 시키자 잠시 후 뜨끈뜨끈한 황태 콩나물 해장국과 공깃밥 그리고 날계란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앞자리 친구는 바로 공깃밥을 해장국에 털어 넣었다. 나는 밥을 따로 먹으려고 한숟가락 퍼서 입에 넣었는데 식감이 영 이상했다.
"이거 밥 설익은 것 같은데."
그러자 옆에 있던 친구도 밥을 먹어보고 이상하다고 했다. 그래도 친구는 배가 고팠는지 그냥 국에 밥을 말아서 먹기 시작했다.
난 종업원을 불렀다. 바빠서 그런지 한참 있다가 왔다.
"이거 밥 이상한데요. 밥 확인 좀 해주실래요?"
그런데 직원은 별 반응이 없다. 그러더니 조금 있다가 사장님한테 얘기하는 것 같았다. 사장님이 와서 다시 밥이 설익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사장님도 바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고, 다른 직원에게 큰 소리로 "여기 손님 밥 좀 봐줘라" 그러고는 가버렸다.
그런데 아무도 오지 않고, 가져간 밥은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았다. 다들 잘 먹고 있는데 나 혼자 유난을 떠는 건가 싶기도 하고, 원래 그 집은 밥이 설 익은 상태에서 팔팔 끓는 국에 말아서 먹는 방식인가 싶기도 하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계속 주방을 주시했지만 내 공깃밥을 해결해줄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다른 손님들 응대하기 바빴다.
그래서 처음 직원에게 다시 "여기 공깃밥 안 줘요?"라고 말하자, 직원은 다시 주방으로 가더니 뭐라고 말을 했다. 그러더니 국 세 그릇을 다시 내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들끼리 나갔는데 이상하다는 태도였다. 나는 다시 "공깃밥 주라고요." 그러자 다른 직원은 내오뎐 국 그릇은 다시 가져가고 또 다른 직원에게 뭐라고 말을 했다.
그제서야 밥솥에서 밥을 푸더니 세 그릇을 퍼오는 것 아닌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손님들이 많기는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 전혀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사장에게까지 말했는데도 관리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가 나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불쾌감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새로 밥을 가져다주면서도 해명이나 사과의 말은 없었다. 새로 가져온 밥 역시 그 전 밥보다 특별히 나아졌는지 잘 판단할 수 없었다. 친구들은 "아침부터 왜 화를 내고 그래? 그냥 먹어. 말아먹으면 먹을만 해" "국은 아주 맛있어." 결국 나만 속좁고,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 역시 특별히 아침부터 문제를 삼고 심지 않아서 그냥 밥을 말아서 먹었다. 내가 화를 냈다면 내가 나쁜 사람인 것일까?
우리는 때로 부당한 일을 겪는다. 그런데 그것이 자신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객관적으로 부당한 것인지 판가름하기 힘들어 그냥 참는 경우가 많다. 또 문제를 일으켰을 때 문제제기 자체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선뜻 나서지 못한다. 그리고 성격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제기는 쉽지 않다.
친구들과 만남은 즐겁고 유익했지만 공깃밥 두 그릇 때문에 그 좋음이 훼손되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