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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랑취객 May 18. 2020

아버지와 돈 훌리오
그리고 투박한 손

아버지와 아들, 둘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해외여행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을 때 나는 아직 오키나와에 있었다. 항상 가시던 산악회 산행길의 전날, 나는 이상하게도 갑자기 부모님이 보고 싶어 영상통화를 걸었고 그게 마지막으로 들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마지막으로 함께 간 여행은,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로 넘어가기 직전 정말 갑작스럽게 아버지 공장의 출장에 따라나선 멕시코 여행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거래처는 몇 번 가봤어도 머나먼 아메리카 대륙까지 가기엔 너무 멀고 부담돼 거래처 일을 미루던 아버지께 나만 믿고 가시자고 했다. 나는 옳다구나 여행 갈 기회다 하고 따라나섰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는 아버지와의 단둘이 해외여행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버지는 충남 공주 이인면 신흥리라는 작은 집성촌에서 태어나 10남매 중 전쟁 후 살아남은 5남매의 아들 중엔 막내, 막내 여동생에겐 제일 가까운 넷째 오빠였다. 시골 사람이었다.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도 없었을뿐더러 형들이 농사로 근근이 집안을 먹여 살릴 때 홀로 서울로 올라가 이곳저곳 떠돌다 공장에 들어가 일을 배워야만 했다. 손재주가 워낙 좋아 일을 금방 배웠고, 그때 우리나라에는 없던 인쇄기 냉각 기술을 일본까지 가서 기계를 몇 번 훑어본 것만으로 배워와 사업을 시작했다. 그즈음 이인면 옆 동네 드센 처자였던 어머니와 선으로 만나 결혼했다.


그때의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젊었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기억나는 아버지 모습은 맨날 어머니한테 혼나는 모습, 늦게까지 일하다 들어와 늘어진 하얀 러닝을 입고 허허 웃다가 집이 떠나가라 코 골며 잠드는 모습. 공장 가는 길에 트럭으로 나를 학교까지 실어다 주다가 내가 옆에서 자는 것도 까먹고 공장까지 가버린 기억, 동네 편의점에서 친구랑 막걸리 마시다가 얼큰히 취해 들어와서는 누나들 먼저 좋다고 따라다니다가 그제야 나를 보곤 ‘아덜!’ 하며 껄껄 대던 기억. 존경하기보단 친근한, 본인은 가부장적이고 싶었던 것 같지만 항상 실패했던, 귀여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와 갑자기 떠난 멕시코 여행에선 그렇게 커다랗던 아버지가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내 키는 훌쩍 커버려 아버지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 컸고, 살벌한 미국 입국 심사에서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들어 허둥지둥 대던 아버지를 이끈 건 아들이었다. 평생을 시끄런 기계 사이에서 일해서 청각을 많이 잃어 보청기를 끼고, 거래처 숙소에서 뒤돌아 누워 잠든 아버지의 굽은 등과 어깨는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아버지는 레스토랑에서 이것저것 주문하며 기세 등등한 거래처 사장 앞에서 보다, 어마어마하게 큰 기계 앞에서 시커멓고 영어 한마디 못하는 시골 멕시코 노동자들과 더 편해 보이셨다. 머나먼 멕시코까지 와서는 주변 관광은커녕 기계 앞에 쭈그리고 앉아 돋보기안경을 끼고 멕시코 노동자들에게 손짓 발짓으로 이것저것 지시하며 일만 하셨다. 나도 옆에 앉아 며칠간은 잡일을 도와드렸지만 결국 좀이 쑤셔 혼자 멕시코시티로 가서 옛 교환학생 친구들을 만나 놀다 왔다.


지구 반대편 멕시코까지 와서는 일주일 내내 기계 앞에만 매달려 계셨다.

 

   일도 다 끝나고 나도 멕시코시티에서 돌아와 한국으로 떠나기 마지막 저녁, 숙소에서 거래처 사장과 아버지 지인과 단출하게 식사하며 술을 마셨다. 두 딸들이 끌고 다닌 그 좋은 여행지에서도 김치와 라면, 한식들만 찾는 시골 사람 아버지는, 멕시코까지 와서도 소주가 좋다고 하셨다. 이리저리 떠돌며 술 좀 먹어본 아들내미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서 테킬라 ‘돈 훌리오’를 아버지 잔에 가득 따라 드렸다. 아버지는 구시렁구시렁거리시다가 한잔하고는 눈을 크게 뜨셨다. ‘아이고야 뭐 이리 맛있는 술이 다 있냐?’. 


    아들이 신이나 ‘아빠 이게, 멕시코 전통술 테킬라라는 술이야. 오늘 지나가다 본 용설란이라는 식물을 발효한 게 풀케고, 그걸 증류하면 메즈칼이야. 테킬라는 그중에서도 테킬라라는 마을에서만 생산되는 술인데! 이 돈 훌리오는 그 테킬라 중에서도 제일 먼저 상업적 판매를 한 아주 고오급 술이야’라고 끝도 없이 수다를 떨었다.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듣던 아버지는 조금 듣다가 흥미가 떨어졌는지 다시 돈 훌리오를 연거푸 들이키셨다. 그날 밤 아버지는 알딸딸하게 취해 내 옆에 누워 처음 들어보는 아버지 인생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또다시 길고 긴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돌아온 아버지와 나는 많이 지쳤지만 그래도 꽤나 즐거웠다. 아버지는 돈 훌리오를 두어 병 챙겨 오셔서 큰 누나가 사다 준 시바스 리갈과 작은 누나가 사다 준 니혼슈 옆에 소중히 보관했다. 그리고는 며칠 뒤 큰 누나가 데려온 사위 될 사람 앞에서 좋은 술을 자랑스럽게 꺼내셨다. 즐겁게 마시다가 또 뻗어버린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나는 앞으로 아버지에게 좋은 여행, 좋은 술 많이 경험하게 해드리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멕시코 여행 덕에 몰랐던 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는 나는 다시 오키나와로 들어가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다음으로 아버지를 직접 본 것은 차가운 영안실에 누워 계신 현실 같지 않은 풍경이었다. 몇 번이나 큰 불운으로 돈을 많이 잃었으면서도 매일 늦은 밤까지 기계기름을 가득 묻히며 일해 온 아버지의 투박한 손. 술 마시고 기분 좋게 들어와서는 질색하는 누나들 얼굴을 ‘우리 공주!’ 하며 감싸 쥐던, 그 커다랗던 손은 영안실 하얀 천 아래 내 한 손에 쏙 들어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좋은 술을 보면, 때때로 아버지가 생각난다. 처음 맛보는 테킬라에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유 좋은 술이 많네’ 신나 하시던 그 모습. 한 달 뒤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째 기일이다. 나는 지금까지도 현실을 회피하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기일이 되면 아버지 묻힌 나무 보러 간 가족들에게 영상통화하며 ‘아빠 보고 싶다’라는 말만 하는 말뿐인 못난 아덜이다. 


    이번 기일에는 돈 훌리오 하나 사서, 아빠 한잔 나 한잔. 그렇게 하루를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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