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얻은 사람의 가치
롤란드 아저씨는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먼저 간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셨다. 나는 두 시간 반쯤 더 푹 자고 일어나 모두가 일찌감치 떠난 숙소에서 가장 늦게 나왔다. 해가 저물 때까지 걸었다.
속도에 대한 압박이 없는 일상이 너무나 생경했고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싶었기에 길을 가다가도 힘이 들면, 맘에 드는 곳이 나타나면 보따리를 풀고 누워 쥐포를 뜯어먹었다. 지나가던 한국인 친구들은 “알베르게가 저기 있네”하면서 날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남들보다 조금 늦게 시작해도, 마음껏 늑장을 부려도 괜찮았던 이유는 단순히 그 순간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 자세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하다.
롤란드 아저씨는 이따금 내 머리맡에 직접 싼 샌드위치를 남겨 주고 가셨고, 뒤늦게 친해진 한국인 친구들은 집단에 섞이는 대신 제멋대로 행동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이해해주며 느닷없이 질질 짜며 숙소로 들어온 날도 아무런 이유를 묻지 않고 꼭 안아주었다. 덕분에 나는 원하는 만큼의 자유를 양껏 두둑이 누렸다.
먼저 날 챙겨주거나, 내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었던 누군가가 항상 있었다. 순례길을 다녀온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부족하고 못난 나를 끌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하다. 그런 시선으로 일상을 바라볼 수 있어 다행이다. 행’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