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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 Kim Mar 11. 2023

“계속 달려. 그러다보면 호흡이 뚫려.”

피지컬100에서 본 나를 지켜내는 방법

6년 차 에디터다. 햇수로 따지면 7년 차다. 프리랜서가 된 뒤로 다행스럽게도 일이 끊기지 않았다. 나를 찾아주고 멋진 기회를 주는 분들을 만났다. 맛만 보고 발을 빼기보다, 소수의 회사와 깊고 진득하게 일했다. 벌써 1년이 됐다.


자연스럽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면서 일의 영역도 확장됐다. 나는 프리랜서인데 반고정 직원처럼 일한다. 그러다보니 애로사항이 생겼다. 문제는 바로 나다. 더 잘하고 싶은데 그만큼 따라주지 못해서. 다른 에디터라면, 내가 만났던 전 직장의 훌륭한 친구들이라면 이보단 잘하지 않았을까? 궁상맞은 생각을 한다.


괴로웠는데 그 조바심을 한 꺼풀 벗겨내 보았다. 솔직해져 봤다. 신뢰를 보내주는 이들에게 잘 보이려고, 조금이라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자존심 상해서. 그래서 나는 나에게 실망했던 게 아닐까?


생각을 다시 가다듬었다. '그들에 비해 난...'이라는 비교 우위를 머리에서 싹 없앴다. 그리고 기준점을 세웠다. 나의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 건 오로지 어제의 나뿐이다. 오늘도, 앞으로도, 평생 동안 수많은 비교질을 하며 살아가게 될 텐데, 늘 비교의 기준은 과거의 내가 되어야 한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재밌어서다. 그러나 일이 과도한 부담이, 스트레스가, 오기가 되는 순간, 그건 재미를 벗어난 의무가 되어버린다.




이쯤에서 피지컬100 이야기를 꺼낸다. 잡음이 많은 프로지만 나에게는 기억에 남는 딱 한 장면, 한 대사가 있다. 갈비뼈를 다쳐 오래 달리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한 참가자에게 동료가 내뱉은 말이 있다. "계속 달려, 계속. 계속. 계속. 그러다보면 호흡이 뚫려."


이십 대 때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감정적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고통스러웠다. 그런데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는 감정이 아니라, 높은 업무 강도를 육체적 에너지가 따라가지 못해 머리가 울렁거리고 생활의 중심축을 놓쳐버리는 일이 잦았다. 올 1월. 운동과 명상을 시작했다. 습관화가 되면서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담았다가 터지는 일, 방전이 돼버려 혼이 빠지는 일이 비약적으로 줄었다.


힘들어도 이 정도쯤이야.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는 생각을 더 하게 됐다. 그러면서 아주 조금 느끼게 됐다.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면 호흡이 뚫린다는 거, 이런 거구나.


아침마다 러닝을 한다. 짧게는 2.5km, 길게는 5km씩 뛴다. 3분씩 5번, 5분씩 4번 뛰던 내가 이제는 7분씩 3번 뛴다. 폐활량이 늘었다. 어느 날 뛰는데 갈비뼈가 아팠다. 너무 아픈데 스톱워치가 울리기 전에 달리기를 멈추기는 싫었다. 이상한 고집이지만 겨우 이 정도로 나와의 약속을 어기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뛰다 보니 어느 순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피지컬100 참가자들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진 않아,라는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 온 과거의 자신에 대한 자부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된다. 그 이상의 실체적인 목적이 있어야 더 오래 달릴 수 있다. 더 오래, 고통을 참을 수 있다. 그들에게는 3억이라는 상금이 그 목적이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돌고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나의 부족함 때문에 고통스러울 땐,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받아들인다. 아무리 힘들어도 호흡이 뚫리듯 힘듦을 쾌감으로 전환하는 방법도 조금은 터득하게 됐다.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내가 이렇게까지 노력하며 일하고 싶은 이유, 이렇게까지 노력하며 일해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많은 답안을 떠올렸는데, 정답은 참 단순하고 속물적이다.


나의 한계점을 매일 조금씩 확장하며

나의 가치를 끌어올려서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건 좀 얘기하기 뭐 하지만

언젠가 태어날 미래의 아가에게

엄마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되면, 금전적 보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까?


지금 내가 내린 정답은 이 세 가지다.

나는 그냥 재미있는 이 일을 더 잘하고 싶다.

나 자신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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