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on Jul 14. 2023

여성징병제라는 용어가 틀린 이유. 성평등의무복무제

 단어가 생각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사고에도 영향을 준다는 뜻이다. 정치에서는 특히 이런 점들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걸 '프레임'이라고도 한다. 프레임을 번역하자면 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사고의 틀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에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킬 때 반대파인 민주당은 이 용어를 거부하고 국민 감청에 초점을 두었다. 테러방지라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국민들이 봤을 때 이해하기 어려우니 그런 것이다. 반대로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 측이 이 용어를 사용한 것도 예상할 수 있는 민주당이나 일부 국민의 반발심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거다. 최근에는 차별금지법이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되자 평등법이라는 이름으로 재등장했다. 이 외에도 예시는 수없이 많다.

 이 관점에서 여성징병제라는 용어의 부정확함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여성징병제라는 용어 대신에 성평등의무복무제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우선 지금 흔히 한국을 징병제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남성징병제다. 따라서 여성징병제라고 말하는 것은 여성을 징병하고 남성은 징병하지 않는 상황, 즉 지금과 정확히 반대의 상황을 의미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나 젊은 세대가 여성징병제라고 말할 때는 여성만 징병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건국 이후 남성만 징병했으니 향후 몇 십 년은 여성만 징병하자는 의견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경우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성평등이라는 용어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남녀평등/여남평등 징병제라고 할 수 있으나 이 경우 제3의 성은 배제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렇다면 왜 징병제가 아니라 의무복무제인가. 현재 남한에서는 사회복무제도가 존재한다. 장애인 강제 노동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사회복무제도는 노동의 내용이 국방과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에서는 국방과 관련된 징병은 국가의 주권 사항으로 보기 때문에 일반적인 징병은 강제 노동이 아니다. 따라서 징병제라는 용어를 쓸 경우 사회복무제도로 복무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워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의무복무제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복무제도 여부와 별개로 징병제라는 말이 줄 수 있는 거부감을 줄일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남한이 실제로 여성까지 포용하는 모두를 위한 의무복무제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인가? 불평등에 익숙한 남한 사회 특성을 고려할 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매우 회의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전망과 별개로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적 토론의 첫 출발점이라고 생각하기에 글을 남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주국방이라는 환상과 한미 동맹이라는 현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