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친구들 9호] 박은지의 에세이
* <작은 친구들>은 동물책 소규모 서점 동반북스와 친구들이 만들어가는 매거진입니다. 우리에게 영감을 준 털복숭이 작은 친구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정기 간행물입니다. 월1회 발행되며 4컷 만화와 크루들이 추천한 도서를 비롯해 채식레시피, 일상의 온기를 담은 에세이를 싣습니다.
아침에 평소처럼 눈을 떴는데 어쩐지 왼쪽 목과 어깨가 영 불편했다. 꼼지락 꼼지락 움직여보니 내 왼쪽 얼굴에 바짝 붙어서 날 옴싹달싹 못하게 만든 채로 잠들어 있는 건 고양이 제이였다. 평소에도 내 베개를 침대 삼아서 누워 자는 걸 좋아하는데, 어느새 점점 내게 밀착해 급기야 얼굴과 어깨에 끼어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촉감을 느끼기도 전에, 잠자는 동안 제이의 침대 역할을 충실히 하느라 고생한 내 몸이 삐그덕대고 있었다.
그날 잠을 불편하게 자서 그런지 이후로 며칠 동안 목이 뻐근했다. 그래도 잠자리에 들면 또 당연하다는 듯 나의 머리맡으로 슬그머니 다가오는 고양이를 밀어낼 수는 없다. 사실 예전에는 고양이들도 내 발치 쪽에서 자곤 했는데, 내가 뒤척거리면서 실수로 밀어서 떨어뜨리는 일도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나름대로 영리하게 비교적 안전한 머리맡으로 옮겨온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고양이들이 점점 더 몸에 가까이 붙어 자는 것은 아마 이제 날이 추워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그라데이션처럼 찾아올 줄 알았던 가을을 건너뛰고, 며칠 동안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급격히 기온이 떨어졌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10월 한복판이었다. 다행히 겨울처럼 차디찬 날씨가 스쳐간 뒤에는 다시 기온이 다소 오르는 듯했지만, 정신이 번뜩 들어 건조한 집안에 가습기를 켜고 미뤄두었던 전기매트를 깔았다. 따뜻하게 덥혀진 이불 속으로 쏙 파고드는 건 역시 추운 날에 만끽할 수 있는 작은 즐거움이다.
공기가 차면 즉각적으로 손발이 차가워지는 체질이라 추운 계절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나는 여름보다는 겨울을 좋아한다. 여름은 뭘 해도 시원하지가 않은데, 겨울은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해지는 것들이 잔뜩 있으니까. 포근한 담요, 두툼한 외투, 따뜻한 목도리부터 동그란 호빵, 이불 속에서 까먹으면 한없이 들어가는 귤, 따끈한 어묵탕까지 겨울 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모두 포근하고 다정한 느낌이다. 예전처럼 길에서 군고구마를 많이 팔지 않는 게 아쉽지만, 편의점에 호빵과 군고구마가 등장하고 과일가게에 귤이 몇 상자씩 담겨 있으면 이제 겨울에 접어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우리 집 고양이들도 여름엔 아침마다 베란다 캣타워에 올라가 햇볕을 쬐고 있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베란다에 잘 나가지 않는다. 대신 집안 곳곳에 있는 숨숨집에 각자 들어가 있을 때가 많아졌다. 문득 ‘고양이들이 어디 갔지?’ 싶어 둘러보면 책장에 있는 숨숨집에서 빼꼼 튀어나온 아리의 뒷발이 보이거나, 조그만 숨숨집에 몸이 꽉 차게 들어간 달이의 노란 꼬리가 슬쩍 보이는 식이다. 이런 날들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아마 집에 고양이가 사는 줄도 모를 것이다.
아니면 난방을 켜놓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녹아내려 있을 때도 많다. 고양이들이 누워 있는 그 자리가 바로 난방이 가장 따끈하게 들어오는 자리다. 리트리버 여름이가 지나가면 혹시라도 밟힐까 봐 바닥에서 피할 만도 한데, 한껏 늘어져 있을 때는 여름이든 사람이든 지나다녀도 고개만 힐끔 돌려 쳐다볼 뿐이다. 알아서 따뜻한 곳을 찾아 겨울을 날 준비를 하는 고양이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웃음이 난다. 겨울에는 고양이들도 활동량이 줄어들어 살이 찌기 쉽다는데,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안 그래도 게으른 녀석들이 더 게을러지는 시기다.
하루는 동네 카페에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고양이 세 마리가 모두 침대 위에 올라가서 자고 있었다. 달이는 아예 몸통을 길게 늘이고 드러누워서 제대로 꿀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별 생각 없이 지나치다가 문득 침대 위를 만져보니 따끈따끈하다. 아침에 내가 전기매트를 끄지 않고 외출했고, 덕분에 고양이들이 귀신같이 집에서 가장 따뜻하고 포근한 장소 위로 모여든 것이다. 그래, 너희라도 써줘서 다행이다…….
집고양이들은 집에서 지내다 보니 계절감을 잘 느끼지 못해서 열두 달 내내 털갈이를 한다는 말도 있던데, 사실 계절마다 고양이들의 행동 패턴에서 오히려 계절감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따뜻한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있으면 고양이 한두 마리가 꼭 내 곁으로 다가와서 몸을 붙이고 눕는다. 나를 베개 정도로 쓰는 건지, 나를 좋아하는 건지 좀 헷갈리지만 기분 좋아서 내는 골골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한동안은 이런 계절이 이어지겠지. 숨숨집에 들어가는 고양이처럼 나도 웬만하면 침대 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볼 생각이다.
글쓴이.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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