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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 May 05. 2024

죄 많은 소녀

김의석 감독의 죄 많은 소녀(2017)


억울한 소녀의 생명력


분명 유쾌한 영화는 아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한 번씩 찾고 싶어진다. 굉장히 뜬금없긴 하지만 이 영화는 <친절한 금자씨, 2005>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표면적인 느낌으로는 이들 사이에 유사점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복수라는 소재가 겹치긴 하나 관련성을 찾기엔 느낌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분위기도, 색채도 너무나 다르니까.


그런 이들의 사이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끌림에 의해 이어진다. 자극적인 것,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 나약하지만 강한 것, 밟힐수록 꿈틀거리는 것, 상실로부터 얻은 억척스런 생명력과 분노에서 시작된 끊임없이 샘솟는 파괴력을 함께 지닌 것. 그래서 이 영화에선 답답함보다 후련함을, 참담함보다 약간의 쓸쓸함만을 더 느끼게 된다.


금자도, 영희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독이 올라있다. 상처로 인해 뭉개진 감정을 가슴에 묻고 무너진 자신을 되살리기 위해, 두 번 다시는 당하지 않기 위해, 이제는 나를 지키기 위해 복수를 행하는 독사. 그런 그들로부터 일상적이지 않은, 독특하고도 자극적인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난 다시 영화를 찾게 되고 또 보게 된다.



죄 많은 소녀의 죄


죄 많은 소녀가 저지른 죄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볍다. 겨우 말 한마디. 말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말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고. 그러나 하나의 힘만으로 인간을 움직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는 요즘, 이 소녀가 짊어지게 된 말 한마디에 대한 잘못의 실체는 보잘것없고 초라한 규모로 축소되어 내게 전달되었다.


우린 지금, 이 순간에만 갇혀 살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연속적이다. 지금의 나는 방금 스쳐 지나간 순간으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리고 어제 만난 이들과의 사소한 대화에서도, 지금 듣고 있는 음악에서도, 길을 건너며 본 간판에서도,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서도 영향을 받는다. 우리 사람들 세계에선 하나의 원인만으로 만들어지는 결과는 없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수많은 지난날과, 수많은 이들과의 만남과, 지금 펼쳐진 이 다채로운 상황이 기가 막힌 타이밍 아래, 적절한 배합으로 뒤섞여야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영희의 그 말 한마디도 그렇지 않을까? 감독의 시선만 따라가도 경민의 자살에 보다 많은 것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부모님, 집안 분위기, 친구, 학교에서의 위치, 즐겨듣는 음악, 주변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자신에 대해 떠들어대는 말. 그 모든 것들이 경민을 죽이는 데 일조했다. 그래서 극이 진행될수록 영희의 죄는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덜어진 죄는 경민을 둘러싼 다른 이에게로 가 그 무게를 점점 더해간다.



죄에 갇힌 이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의 죄, 잘못에 대해 떠들 일이 생길 때면 그에게 필요 이상의 무게가 실리고 있음을 종종 느낀다. 나의 죄, 그것이 설령 내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는 그 누군가의 죄와는 무관한 것일지라도 타인의 죄에 대해 논할 때면 나는 가벼워진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죄를 덮어씌우고 있는 중이라면 그 정도는 더 커진다. 보통의 인간은 평생을 타깃이 된 누군가에게 나의 죄를 덧씌우는 일을 반복한다. 그렇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옆 사람에게 은근슬쩍 내 짐을 떠넘기는 것쯤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해서 일말의 미안함도 느끼지 못한다.


영화 이야기로 돌아와서 경민의 엄마와, 한솔과, 담임선생님을 떠올려보자. 그들이 소녀를 다그치면서, 몰아세우면서 보여준 그 모든 행태를. 그들은 자신에게 얹힌 무게만큼 더 격하게, 더 많은 말을 내뱉는다. 그리고 학교 안 소녀들. 그들이 떠들어대던 것과 한 소녀의 죄를 가중하면서, 소녀를 향한 왜인지 모를 분노를 표출하면서, 그 모든 과정을 그저 즐기면서 이 사건이 불어넣은 일시적인 분위기에 마구 취해버린다.


죄를 떠넘긴다는 것은 나를 가볍게,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나를 무겁게 하는 죄책감이 생기면 주변에서 정한 타깃을 향해 한바탕 모질게 욕을 쏟아낸다. 그럼 감정이 가벼워지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된다. 또한 힘없는 피해자를 대신하여 복수하는 데 보탬을 준 셈이기 때문에 보람마저 느낄 수 있다. 뿐인가. 내 집단이 정한 공동의 적에게 욕하면서 주변 이들과 즐거운 유대관계도 쌓을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린 죄의 굴레에 갇혀 똑같은 떠넘기고 떠넘기는 쳇바퀴를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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