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 보내는 마음편지
걱정하려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안 아프면 걱정하지 마라
아프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낫는 병인가, 안 낫는 병인가?
낫는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안 낫는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 병인가, 아닌가?
안 죽을 병이면 걱정하지 마라
죽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천국 갈 것 같은가, 지옥 갈 것 같은가?
천국에 갈 것 같으면 걱정하지 마라
지옥에 간다면
지옥에 떨어질 놈이 걱정해서 뭔 소용인가?
어디선가 보고 노트에 적어놓은 시(?)인데 암것도 걱정할게 없다는 단순한 이분법 구조의 논리적(?) 귀결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번째 명제부터 잘못되었죠.
세상만사 "내가 아픈지 안 아픈지" 말고도 걱정거리는 널려 있습니다.
어니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에 나온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22%는 사소한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의 걱정거리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고 하죠. 즉, 다 빼고 남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들에 대한 것이라는 겁니다. 우리가 걱정하는 일들의 96%는 우리가 제어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것이고, 우리가 제어할 수 있는 4%의 일은 그냥 하면 되니, 결과적으로 걱정은 100% 쓸데없는 일이라는 거죠!
아... 이런 명쾌한 논리를 봐도 그런가 보군 할 뿐이죠. 우리는 맨날 걱정합니다. '걱정해서 걱정을 없앨 수 있다면 걱정이 없겠다'라는 티베트 속담도 있습니다. 걱정은 사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른 고등 생명체와 달리 인류가 절멸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다만, 극도의 걱정은 좋지 않습니다. 편집증에 이를 정도라면 삶에 심각한 문제가 됩니다. 심신이 망가집니다. 이럴 때는 걱정을 해결해주는 솔루션이 아닌, 걱정을 잠시라도 멈춰줄 수 있는 솔루션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유념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걱정은 결코 내일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내일은 또 내일대로 흘러갑니다. 걱정은 오늘을 살아야 할 에너지를 소모시킵니다. 철저한 준비와 걱정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칼릴 지브란의 멋진 말이 있죠 - 두려움은 곧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고 무엇이랴?
걱정을 하면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이 흐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이유와 핑계를 스스로 만들어냅니다. 어두운 상념의 파편들은 다시 불안함과 두려움을 잉태합니다. 비약에 이르고 환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상상속의 공포라는 수렁에 점점 빠지게 됩니다. 마크 트웨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온갖 끔찍한 일들을 경험하지만, 그 끔찍한 일들의 대부분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입니다. 우울한 생각들과 접점을 찾아가다보면 마음은 어둠에 잠식당하기 마련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는 증폭됩니다. 스스로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렇게 과도한 스트레스 상태에서는 창조는 개뿔이고 자율적인 사고가 불가능합니다.
덮어놓고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그렇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걱정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것은 걱정을 시작하겠다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딴 짓을 해야 합니다. 여러가지 처방 중에서 정신의학자 이근후가 내린 처방이 전 가장 적절하다고 봅니다.
"억울한 생각, 불안한 생각은 인위적으로 끊어낼 수 없어요. 잊으려고 애쓸수록 과거는 미래는 괴물처럼 커져요. 방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는 일을 찾는 거에요."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겁니다. 운동이든 취미든 일이든 뭐든 괜찮습니다.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거죠. 근본적인 처방은 욕망을 내려놓는다든지 하는 불경에 나온 말씀들이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니깐요.
"탐욕으로부터 걱정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긴다. 탐욕이 없는 곳에 걱정이 없으니 그 어디에 두려움이 있겠는가" -불경
나무아미타불...오늘은 걱정이라는 것에 대해 짧게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걱정보다 즐거움과 확신으로 가득 찬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