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태생적으로 성격이 다소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컵에 물이 절반 차 있는 걸 보면, 남은 물 절반이 언제 줄어들 것인지, 또 줄어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런 지랄 맞은 성격은 일 하는데 나름 장점이 있습니다. 남들이 보지 못 하는 문제나 위험인자를 찾아냅니다. 아무리 그래도 여전히 버그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이기도 합니다. 다행히도 직책이 올라감에 따라 코딩 업무가 많이 줄어든 덕분에 버그는 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부정편향이 큰 사람들은 자칫 잘못하면 삶도 부정적 편항에 이르기 쉽습니다. 만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자기 자신을 폄하할 수 있다는 거죠. 마틴 샐리그먼은 <학습된 낙관주의>에서 자기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특별한 신념 유형 세 가지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그 세가지는 영속성, 파급효과, 인격화입니다.
문제가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보느냐 아닌가,
문제를 확대해석해서 삶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닌가,
문제를 인격화하여 스스로의 인간적인 결점으로 치부하지는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회사생활, 사회생활 등 모든 삶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만나게 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단지 넘어가야 할 하나의 과정으로 여긴다면 마틴셀리그먼이 말한 세 가지 신념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지 결국 지나갑니다. 자신을 파괴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일 뿐입니다.
하지만 어디에선지 올지도 안 올지도 모르는 희망에만 매달려 있는 대신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헤쳐나가려는 자세는 꼭 필요합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맞닥뜨리면 백방으로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애씁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첩첩산중, 진퇴양난이라며 그냥 주저앉습니다. 또다른 실패하는 유형 중에는 비록 주저앉지는 않을지라도 여러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끝끝내 한 가지 방도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프로그램 코드의 버그를 해결할 때도 성공하는 개발자가 있고 실패하는 개발자가 있습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나 코드를 대하는 자세나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실제 있었던 실험인데요. 두 개의 유리병에 각각 파리 다섯 마리와 꿀벌 다섯 마리를 넣고 바닥 쪽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입구는 어둡게 했습니다. 꿀벌들은 모두 바닥으로만 날다가 유리에 부딪혀서 죽었고, 파리는 이리 저리 날다가 결국 입구를 찾아서 병 밖으로 빠져 나간다고 합니다. 헛된 희망에만 매달려 있으면, 끝내 절망에 이를 수 있습니다.
삶에서 만나는 문제들을 계속 해결하지 못 한다면 결국 스스로를 파괴하는 세 가지 신념에 이르는 꿀벌과 마찬가지 신세가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건 우리가 잘 해왔다는 거겠죠! 발자크의 명언을 좀 각색하면 문제라는 것은 길가의 돌부리와 같습니다. 장애가 될 것인지 디딤돌이 될 것인지는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