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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m Feb 03. 2022

3. 여기가 천국인가

호주 Gippsland 여행기- Day2  Norman Beach

아침에 일어나서 블라인드를 올렸는데 말과 소가 보인다. 이 한가로움이란.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 들판을 내다보는 멋진 풍경. 커피가 있으면 정말 완벽할 것 같은데 아무것도 없어서 따끈한 물을 마시며 들판 멍을 때렸다. B에게 부탁하는 준비물 리스트가 점점 길어진다. 우선 커피를 부탁해야지.


적당히 늑장 부리다 아침으로 토스트와 계란을 먹고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쌌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빨리 나가야지. 차를 타고 나가자마자 국립공원 게이트가 보인다. 게이트를 지나 구불구불 도로를 따라 가는데 산 봉우리에 구름이 걸려있고 청명한 하늘과 절로 감탄이 나왔다. 제일 큰 캠핑장인 Tidal river에 visitor centre 가 있어 우선 가보기로 했다. Visitor centre에 트레일 설명이 있는 지도를 얻고 커피를 사서 카페인을 충천했다. 커피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꽤 놀랐다. 역시 멜버니언 대상을 해서 인가?(멜버니언들은 커피에 매우 까다롭다) 커피를 마시고 한 바퀴를 도는데 매점, 야외 영화관까지 있는 매우 큰 캠핑장이었다. 먹을 것과 커피를 사들고 자전거로 본인 텐트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꼬맹이들도 아침부터 에너지가 넘친다.


캠핑장에서 도보로 걸어서 갈 수 있는 비치를 가기로 하고 물과 먹을 것을 가지고 Norman beach로 향했다. 주차장을 지나 모래길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모래사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가는 순간 우리는 절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우와. 진짜 미쳤다.

크흐-

뒤로 보이는 산, 봉우리에 걸쳐 있는 구름. 구름이 백사장에 그리는 그림자들. 곱디고운 모래에 가슴 시원해지는 파란 바다까지. 햇볕이 뜨거워 모래사장은 사우나 같이 뜨거운데 바닷물은 얼음처럼 차가워서 그야말로 열탕과 냉탕이다. 


선탠을 사랑하는 우리는 선크림도 바르고 태닝오일까지 바른다. 모래사장에 누워있는데 사우나에 있는 느낌이다. 찜질방이 그리웠는데 마침 잘 됐다 하며 한동안 누워 책도 읽고 경치도 구경하는데 이제는 너무 뜨겁다. 바다에 들어가 열 좀 식히려 했는데 이제는 물이 너무 차갑다. 주위를 둘러보니 물이 차서인지 꼬맹이들만 들어가 있고 물에서 노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에잇. 그래도 온 김에 들어가자. 심장마비 올 수 있으니 가슴에 물 좀 적시고, 으아아 너무 차다 하며 그냥 몸을 푹 담근다. 왠만한 곳은 막상 들어가서 있다 보면 적응이 되는데 여기는 물이 너무 차서 금방 나왔다. 더우면 물에 들어가고 점심으로는 싸온 샌드위치와 포도를 디저트로 먹으니 노곤노곤 잠이 와서 졸다가 더워서 다시 물에 들어간고 그렇게 자연이 주는 멋진 선물을 오롯이 즐긴다.


A와 이곳은 완벽한 배산임수라며 새해에 호랑이의 기운을 얻어가는 것 같다는 실없는 소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꿈처럼 흘러가 어느새 일어나야 할 시간이 왔다. 더 있고 싶었지만 우리는 중요하게 갈 곳이 있었다.


바로 Gurneys Cider


호주 맥덕 사이다에 눈을 뜨다

난 호주 맥주 덕후다. 멜버른에 살면서 craft beer; 수제 맥주에 눈을 떴고 자칭 타칭 수제 맥주 덕후다. 사이다는 보통 달아서 많이 안 마시는데 친구 B가 선물로 가져온 수제 사이다를 마시고 새로운 세계를 영접했다. (여기서의 사이다는 칠성 사이다가 아니고 사과나 배로 담그는 술이다.) 그 cidery 가 Gippsland에 있어서 우리의 여행 리스트의 가야 할 곳 1위에 올라가 있었다. 신나게 달려 도착한 cidery는 언덕 위에 멋진 시골 전경을 볼 수 있고, 예쁘게 꾸며 놓은 가든도 있어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다.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고프로를 들고 갔더니 주인 할아버지가 정말 친절하게 설명을 다 했주셔서 감동을 받았는데! 녹화가 안됐다. 하아..... 이런이런. 초보 유튜버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Gurneys에서 만드는 사이다는 설탕이 하나도 안 들어가고 순수하게 과일에서 나오는 당분으로 만들고 아들들과 함께 운영하신다 하셨다.


우선 시작은 테이스팅 패들. 제일 잘 팔리는 사이다로 구성이 이루어져 있었다. 테이스팅 패들 이외에 다른 사이다들도 주문하고 무슨 상인 지는 모르겠지만 상을 받았다는 로컬 치즈 플래터도 시켰다. 사이다 중에서는 제일 알려진 pear & apple 이 맛있었고 치즈는 블루치즈가 제일 입맛에 맞았다.


아이들과 가족들로 함께 많이 와서 그런지 무알콜 사이다와 꼬맹이들을 위한 슬러쉬도 있었다. 테이스팅 패들 외에 다른 것들도 주문해서 마시는데 이분들 정말 세일즈를 할 줄 아신다. 우리가 주문하지 않은 다른 사이다들을 시음할 수 있게 무료로 따라주시는 거 아닌가? 잘 보니 테이스팅 패들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고가 라인의 사이다였다. 그중 인상 깊었던 사이다는 Gippsland 특산품인 꿀이 들어간 사이다였다. 은은한 꿀 향과 맛이 약간 톡 쏘는 탄산, 그리고 과일의 적당한 달달함이 어우러지는 것이 정말 독특한 사이다였다.

또, 주인 할아버지를 필두로 모든 스텝이 어찌나 친절한지 감동할 정도였다. 도시 레스토랑도 물론 친절하나 그냥 비즈니스적인 친절이라면 이분들은 정말 진심으로 본인들의 사이다를 자랑스러워하고 고객들이 즐기는 것은 같이 즐기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에도 다시 방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맛있는 음식과 음료, 멋진 풍경 그리고 친절한 직원들까지 모든 것이 잘 맞는 최고의 경험이었다. 떠나기 전 제일 마음에 들었던(그리고 Gurneys의 시그니쳐인) Pear & Apple과 Honey& Pear 그리고 아주 깔끔했던 Pear party perry 캔을 구매했다.



저녁에는 친구 B와 그녀의 남자 친구 M을 만나 저녁을 먹기로 해 서둘러 집에 가 준비를 마쳐야 한다. 이상하다 분명히 푹 쉬려고 온 휴가인데 왜 이렇게 일정이 바쁘지?


양봉업자 M

친구 B는 주로 나쁜 남자들을 좋아했었다. 착한 남자 좀 만나라고 했더니 착한 남자는 매력 없다더니만 그녀의 남자 친구 M은 찬하고 순수한 농촌 총각의 전형이었다. 놀랍게도 수줍음이 엄청 많아서 이렇게 수줍어하는 호주 사람들도 있구나  새삼 알았다.(보통 내가 만나던 호주 사람들은 대부분 outgoing이다) 로컬 펍에서 만나 저녁을 먹는데 수줍어하는 그 사이에 또 꿀이 떨어지는 게 보이는데 이분도 양봉업자구나. 친구 B는 원래 이날 밤에 우리와 합류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그다음 날 온다길래 과연 누구 의견으로 일정을 바꾼 것이 가에 대해 A와 토론을 하며 숙소로 들어왔다.


연예 초기의 그 다디단 사랑의 향을 내니, 나도 내 짝꿍 거북씨가 보고 싶다. 에이. 빨리 잠이나 자야지.

Norman beach



목소리에 묻어나는 이 친절함



Norman beach 

너무 좋았다 :)

https://goo.gl/maps/xYwCtuFYXNqXZMtg8


Gurneys Cider 

별다섯개 추천 

https://goo.gl/maps/DgAjp7S77qcYT5s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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