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기 때문에
열 살 넘게 차이가 나는 친해지고 싶은 사촌 언니가 있었다. 아빠가 장남이었기 때문에 주로 친할머니 댁에서 이틀을 보내고 명절 당일이나 그다음 날 외할머니 댁에 방문하곤 했다. 외가 쪽 친척이던 언니를 만날 수 있는 날은 보통 명절이었다. 그런데 서로의 큰집은 달랐기에 자주 시간이 엇갈렸다. 또 언니의 부모님인 이모와 이모부는 명절 때마다 뵈었는데 언니는 거의 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언니가 오는지, 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물으면 언니는 농담조로 결혼하라는 성화를 듣기 싫어서라고 답했다. 그 당시엔 언니를 못 본다는 사실에 섭섭한 마음이 들 뿐이었다.
주변에서 흔히 말하는 결혼 적령기의 나이, 20대 후반을 향할 무렵부터 언니의 마음을 점점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적 명절은 친척들을 만나 놀고,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는 즐거운 날이었다. 성인이 되어 마주한 명절은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소중한 연휴다. 특히나 평소 또래들과 대화를 나누다 명절에 어른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면 종종 전통적 프레임에 피로감을 느낀다. 우선 성별에 따라 구분되는 역할이 보인다. 제사 지낼 때 절을 하는 사람은 온통 남성이다. 앞서 말했듯이 아빠는 장남이고, 난 첫째지만 여성이기에 절을 하지 않는다. 엄마와 고모들을 도와 음식을 하고,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전달하기까지가 나, 그리고 여성의 역할이다. 지금은 코로나 시대라 규모는 많이 줄었지만 손님이 많이 방문했던 할머니 댁에서 우리의 일은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고 치우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나마도 나는 성인이지만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들의 “자식”이기에 계속 매여있지 않고 종종 카페나 바깥으로 피신했다. 며느리인 엄마에겐 보수 없는 빡빡한 노동의 현장이다. 남자 어른도 거들긴 하지만 “나의 일”이 아닌 “도와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여전히 명확히 구분되어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그랬기에 오랜 시간 역할 구분에 대해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인지를 한 뒤에도 용기는 없었고 바꾸기엔 힘이 없었다. 명절이 개인의 휴일로 보이고 나서부터, 미래의 가정을 생각하고부터 뚜렷해졌다. 언젠가 결혼을 하더라도 어느 형태로든 직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또 꿀 같은 명절에 제사 등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쓰고 싶지 않다. 이 때문에 당시 교제하던 연인은 기독교 집안이라 제사를 지내지 않고 외식을 한다는 사실이 장점처럼 다가왔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꽤 긴 시간 교제한 이 연인과의 헤어짐 핑계 중에 나이가 있었다. 당시 29살이던 내 나이를 중요한 나이임과 동시에 황금기라고 표현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에서는 결혼을 하고 자리를 잡는 시기인데 본인과의 연애로는 할 수 없으니 시간 낭비라는 듯 표현했다. 그와의 교제는 누구의 압박도 아닌 나의 선택이었다.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 결혼을 하긴 하지만 공부를 하는 그의 상황을 알기에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언급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핑계인 걸 알았다. 그가 핑계로 내세운 문장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그를 둘러싼 하나둘 결혼한 그의 여성 친구였을까, 사회적 나이 기준 속에서 스스로 내린 판단이었을까. 내 나이를 문제 삼는 그의 태도 덕에 이성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었다. 다만 나보다 몇 살 더 많은 본인은 황금기도 지났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다. 차마 뱉지는 못했지만.
다가올 미래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었다. 결혼과 나이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당연함의 기준은 누가 만든 걸까? 이것 역시 한 명의 생각이 열 명, 백 명, 천 명이 되어 쌓인 결과, 즉 타인의 생각 덩어리다. 그것보다는 스스로의 생각이 중요하다는 걸 알아간다. 시간이 필요한 항목이긴 하지만 급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고려하고 선택할 기회가 있으니까. 당연한 것도 원래 그런 것도 없다. 여성이기 때문도 아니다.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제사를 지내는 것도 마찬가지로.